연구관ㆍ일선 검사 등 공개 반발
검사장 18명 “포기사유 설명하라”
지청장들 “검찰존재 이유 훼손”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ㆍ비리 의혹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검찰의 이례적인 항소 포기 결정을 두고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급기야 일선 검사들은 물론 검사장들까지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노만석 대검찰청 차장에 대한 비판과 사퇴 요구를 쏟아내면서 이른바 ‘검란(檢亂)’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 |
| 사진: 대한경제 DB |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 연구관 20여 명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항소 의견을 승인하지 않은 이유, 중앙지검 및 법무부 간에 이뤄진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를 국민과 검찰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달라”고 노 대행에게 요구했다. .
특히 이들의 입장문에는 노 대행을 향해 “거취 표명을 포함해 합당한 책임을 다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실상 노 대행의 사퇴를 촉구하며 공개 항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A부장검사는 “검찰 내부에서 노 대행에 대한 신뢰는 사실상 ‘제로(0)’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노 대행과 사법연수원 29기 동기인 박재억 수원지검장 등 일선 검사장 18명도 이날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밝힌 입장은 항소 포기의 구체적인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노 대행의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일선 검사장들이 대검 수뇌부를 향해 집단 성명을 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고참 지청장들도 이날 집단 성명을 내고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며 “이번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전날 노 대행은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정진우 중앙지검장은 “중앙지검의 의견을 설득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며 중앙지검은 끝까지 항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대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항소를 포기했다는 취지로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이 적절했는지, 다른 하나는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의 핵심 기능인 공소유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며 항소 포기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1심에서 사건 관련자들에게 실형이 선고되긴 했지만, 특정경제범죄법 위반(배임) 혐의나 뇌물 혐의 등 무죄가 선고된 주요 혐의는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2심에서 다툴 수 없게 된 데다 범죄수익 환수 규모도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은 피고인이 항소한 사건이나 피고인을 위해 항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원심 판결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은 항소를 포기한 반면 피고인 5명만 항소해 2심에서는 이 원칙에 따라 1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없다.
여권 등 일각에서는 ‘대검 예규에 따라 선고된 형량이 구형량의 절반 이상이면 항소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대검 예규인 ‘검사 구형 및 상소 등에 관한 업무 처리 지침’은 양형부당과 관련해 ‘형종은 동일하나 선고형량이 구형량의 2분의 1 미만인 경우 항소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항소하면 안 된다’는 문구나 기준은 없다.
검사장을 지낸 B변호사는 “검찰 역사상 이번 사건처럼 중대한 사건에서 항소를 포기한 전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항소를 안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대검에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신중히 판단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장관은 “검찰의 구형보다도 높은 형이 선고됐고, 검찰 항소 기준인 양형기준을 초과한 형을 선고받았다”며 “원론적으로 성공한 수사, 성공한 재판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법무부가 대검찰에 지시를 하거나 지침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보고를 받지만, 지침을 준 바는 없다”며 “여러가지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라는 정도의 의사표현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 재판과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는 “이 사건이 이 대통령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선을 그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당시 성남시장으로서 민간업자들에 유리한 사업 구조를 최종 승인해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별도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재판은 중단된 상태다.
이승윤 기자 leesy@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