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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대한민국 시민운동의 원조는 YMCA다.... 시민운동의 역사적 흐름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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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1-21 10:22:15   폰트크기 변경      

오재관 시민운동가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출발점을 1980년대 후반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나 1990년대의 참여연대로 설명하는 자료와 언론 보도가 여전히 많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 시민운동의 첫걸음을 떼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이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그러한 왜곡을 볼 때마다 허탈함과 깊은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잘못 알려진 시민운동의 역사를 바로잡고, 시민의 눈물에서 시작된 시민운동의 원형을 다시 세워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쓴 것이다.

한국 시민운동의 씨앗은 경실련이나 참여연대보다 10여 년 앞서, 1978년 4월 서울YMCA가 제도적 형태로 시작한 ‘시민중계실 사업’과 그에 이은 ‘시민자구운동’에서 움텄다.


서울YMCA는 강압과 감시가 일상화된 군사정권의 상황에서도 산업화의 그늘에 놓였던 전세 피해자, 임금 체불 노동자, 산업재해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시민중계실을 열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시민 권익을 제도적으로 다룬 공식 창구였다.

1988년까지 축적된 5만여 건의 상담 사례는 당시 사회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그대로 드러냈고, YMCA는 이를 바탕으로 시민의 고통을 사회문제로 끌어올리며 정부와 제도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전세 피해자들을 위해 10여 년간 ‘주택임대차보호법’ 제정과 개정에 앞장서 임차인의 대항력을 확보한 일은 시민사회가 이룬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다.


이 법은 말 그대로 시민의 눈물에서 태어난 첫 번째 시민의 법이었다.


또한 거대한 11개 손해보험 회사를 상대로 벌인 자동차 종합보험 불공정 약관 철폐 운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불공정 약관 시정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1985년 외채 위기와 무분별한 외제 소비가 팽배하던 시기에, 서울YMCA는 시민자구운동의 목적으로 국산타이어 사용 장려운동, 양담배 불매운동, 헌종이 모으기 운동 등을 펼쳐 소비문화와 경제 의식의 전환을 이끌었다.


국산타이어 사용 장려운동은 2년간의 활동 끝에 외제 타이어의 국내 시장점유율 11%를 4%로 낮추며 막대한 외채 절감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낳았다.


양담배 불매운동은 외산 담배의 국내 정착을 저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헌종이 모으기 운동은 우리나라 분리수거 문화의 원천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은 자유로운 발언조차 억눌리던 군사정권 시절에 이루어졌다.


그 시대에 시민이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곧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고, ‘시민운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고 위험하게 들리던 때였다.


그런 시대에 서울YMCA는 두려움보다 양심을, 침묵보다 행동을 선택했다.


작은 상담창구였던 시민중계실은 국가가 아닌 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선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 실천과 용기는 단순한 시대의 기록을 넘어 오늘의 시민사회가 존재하게 된 뿌리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YMCA는 시민중계실을 통해 억울함을 접수하고 제도적 문제를 부각시켰으며, 시민자구운동을 통해 시민 스스로 경제·사회적 참여를 실천하게 했다.


이 두 흐름이 맞물리며 문제 제기, 사회 참여, 제도 개선이라는 건강한 시민운동의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고, 이후 만들어진 후발 시민단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역사적·제도적 기반도 마련되었다. 이는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과 한국 시민운동의 지평을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시민운동의 초심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시민의 눈물에 공감하고 행동으로 나서는 용기였다. 지금의 시민운동과는 결이 다르다.


정치적 이해에 흔들리지 않고, 일회성 구호나 시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고통을 짊어지고 시민의 아픔과 함께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춰졌지만, 초기 시민운동은 황무지와 다름없는 상황 속에서 오직 땀과 눈물만으로 길을 만들어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시민운동’이라는 개념과 용어 자체도 YMCA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후발 시민단체들이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원조인 것처럼 알려지는 왜곡은 반드시 바로잡혀야 한다.


시민운동을 처음으로 열고, 마치 광야에서 길을 찾아 헤매듯 고독한 길을 걸으며 온갖 어려움과 희생을 감내해 온 사람으로서, 한국 시민운동의 뿌리이자 원조는 YMCA라는 사실이 제대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이 모든 사실을 YMCA 시민운동을 처음부터 주도했던 본인 자신이 직접 알려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재관 시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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