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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전하는 CSI②] 검사기관 난립·덤핑수주·유령시험 만연…품질관리 총체적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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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2-10 06:00:55   폰트크기 변경      

작년 제도 도입 후 진입장벽 완화
민간기관 급증세…190여곳 달해
지나친 경쟁 탓 저가수주 관행화

실제 시험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합격 수치 포장, 허위성적서 남발
영업직원 서류 조작 등 편법 교묘

건기연, 年 1회 사후평가 ‘역부족’
행정처분 받아도 상호 바꿔 등록
보다못한 대형 건설사, 자체 제재


[대한경제=박흥순 기자] 건설 자재의 안전성을 검증해야 할 품질검사 전문기관들이 과도한 수주 경쟁 탓에 ‘부실 검사’의 늪에 빠졌다. 지난 2014년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전부개정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민간 시험기관이 급증했고, 이 과정에서 저가 수주와 허위 성적서 발급이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다.


그래픽:대한경제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품질검사 전문기관은 190여 곳에 달한다. 검사 물량은 줄었는데 기관 수만 늘다 보니 시장은 “누가 더 싸게 쓰느냐”를 겨루는 싸움으로 변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부 기관은 정상 수수료의 40% 수준에 불과한 이른바 ‘덤핑 수주’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예컨대 시험 단가가 1만원인 공사에서 5000원, 4000원에 수주하는 식이다. 인건비와 장비 유지비를 고려하면 정상적인 시험으로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가격이다.

이런 구조는 곧 ‘유령 시험’으로 이어진다. 품질검사기관 관계자는 “덤핑으로 물량을 따낸 뒤 실제 시험은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합격 값만 입력해 성적서를 발급하는 관행이 공공연하다”며 “시험을 안 하면 비용이 안 들기 때문에 반값에 수주해도 남는 장사가 된다”고 털어놨다.

편법 수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여러 영업직원이 품질시험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자신이 수주해 온 건을 본인이 시험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현장에 나가 시험을 하지 않거나, 간단한 확인 절차만 거친 뒤 정식 시험을 한 것처럼 CSI에 데이터를 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증언이다.

관리·감독을 맡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은 “연 1회 사후평가를 통해 CSI에 등록된 시험검사 자료를 점검하고, 부적정한 경우 지자체에 행정처분을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뿐인 사후평가로는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데이터 조작을 걸러내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행정처분 이력을 보면 구멍 뚫린 감시망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자체 공고에 올라온 자료를 보면 2021년 이후 ‘시험 성적서 거짓 발급’ ‘무자격자 시험 수행’ 등으로 영업정지나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관이 20여곳에 달한다. 올 들어서만 10여곳이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북 익산의 A업체는 두 차례에 걸쳐 허위 성적서를 발급해 수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경기 시흥의 B업체는 건설기술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시험을 진행한 사실이 적발돼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행정처분을 받아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것은 아니다. 한 업체는 광주광역시에서 등록 취소를 당한 뒤 대표자와 상호를 바꿔 경기 평택 지역에 다시 등록했고, 이후에도 시험 성적서를 허위로 발급하다가 또다시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건기연 측은 “건설기술진흥법상 등록 취소 처분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재등록을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법인 대표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거나 가족 명의로 재등록하면 1년 제한 규정을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다”며 “사실상 제재 효력이 없는 셈”이라고 반박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일부 대형 건설사가 정부보다 먼저 칼을 빼 들었다.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DL이앤씨 등은 허위 성적서 발급으로 적발된 기관에 대해 향후 입찰을 원천 차단하는 자체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했다. 이들 건설사는 정부 단속에 적발된 업체의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물론, 기존 협력 업체라 하더라도 적발 시 계약 갱신을 불허하는 등 강도 높은 제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품질검사업계 관계자는 “무한 경쟁 체제에서 덤핑과 부실시험이 반복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국토부가 허위 성적서 적발 업체와 대표자에 대해 일정 기간 재등록을 막고, 간판만 바꿔 재진입하는 편법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품질검사기관을 단순한 용역업체가 아니라 공공 안전을 책임지는 ‘준공공기관’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시험비 하한선 설정과 CSI 상의 제재 정보 공개까지 포함한 강력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흥순 기자 so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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