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건설 인프라 노후화…화재 원인 20% ‘전기적 요인’
전기설비 수명 지나도 무관심…사고 발생해야 교체
“전국 노후 설비, 정밀안전진단 시행 필요”
“내구연한 관리기준, 국민 생명ㆍ재산 지키는 안전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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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관 전기설비 내구연한 법제화 추진위원장이 서울 강남구 삼진일렉스 본사에서 <대한경제>와 인터뷰 도중 법제화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안윤수 기자 |
[인터뷰=정회훈 건설기술부장, 정리=신보훈 기자]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 노후 전기설비 내구연한 법제화가 시급하다.”
인공지능(AI) 기술 발달과 함께 전기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량의 전기를 생산해 수요처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전력 시스템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인프라다.
반면 우리 사회 곳곳의 전기설비는 심각하게 노후화하고 있다. 1970∼80년대 산업화와 함께 건설된 수백만 채의 공동주택과 각종 사회 인프라는 지난 40∼50년간 사용돼왔다. 이들 건축물과 시설물에 설치된 전기설비들 또한 적정 설비수명을 넘어 위태롭게 전기를 옮기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진일렉스 본사에서 만난 김성관 전기설비 내구연한 법제화 추진위원장(삼진일렉스 회장)은 “전력수요 증가로 설비부하가 날로 증가하는데, 전력기기는 노후화돼 화재ㆍ감전 등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전기로 인한 화재나 폭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설비의 안전관리 수준을 한층 더 강화하고, 내구연한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재 5건 중 1건은 ‘전기적’ 요인…국민 안전 위협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는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3만7610건의 화재 중 전기화재는 8634건으로 22.9%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로 인해 371명이 다치거나 사망했고, 재산피해는 약 1700억원에 달했다. 전력업계에선 전기설비 노후화에 따른 성능 저하가 주요 화재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전기설비 내구연한 법제화 추진위원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범했다. 지난 9월 전기관련단체협의회(전단협)는 전력기기 내구연한 법제화 추진을 결의했고, 김성관 삼진일렉스 회장을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김 위원장은 “전기설비는 주기적인 점검과 함께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미흡할 경우 설비의 잔존수명은 급격히 줄어든다. 때문에 한국전력과 조달청 등에선 변압기ㆍ분전반ㆍ배전반 등 기기별 내구연수를 자체적으로 마련해 놓고 있다”고 설명한 뒤, “그러나 현행법에선 전기설비 내구연한을 어디서도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법제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설치된지 40∼50년이 지난 설비도 그대로 방치되는 게 현실이다. 사고가 난 뒤에야 비로소 설비를 교체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다. 김 위원장은 “전기설비의 평균 수명은 15∼20년으로 본다. 이를 지나 노후화하면 화재는 물론이고 정전ㆍ폭발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며 “비용은 수반되겠지만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타협이 있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증하는 전력수요, 법제화로 안전 지켜야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전기화재는 전력수요가 늘어날수록 발생 횟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전력사용량이 497TWh였던 2016년 전기화재가 7563건이었으나, 533TWh를 사용한 2021년에는 8241건으로 증가했다. 작년엔 전력사용량 549TWh에 전기화재가 8634건 발생했다. 김 위원장은 “전력수요 증가는 예정된 미래다. AI와 전기차, 산업설비의 전기화로 전력수요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노후 전기설비의 위험성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이 같은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며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대구ㆍ 경북ㆍ울산ㆍ강원 등을 직접 찾아 법제화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타당성 연구도 들어갔다. 위원회는 지난달 법제화 추진을 위한 연구용역을 맡겼고, 내년 2월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논의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내년 3월부터는 법제화 공론화 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고, 간담회를 통해 정부 및 국회 설득에 나설 예정”이라며 “내년 9월께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는 소방 및 승강기 분야의 안전기준이 있다. 현행 소방시설법에는 분말소화기의 내용연수가 제조일로부터 10년으로 정해져 있으며, 기한을 넘은 소화기는 의무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엘리베이터의 경우 승강기안전관리법에 따라 설치검사를 받은 날부터 15년이 지나면 3년마다 정밀안전검사를 의무적으로 받게 되어 있다. 또, 21년차가 되면 손끼임 방지수단 등 8대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하며, 25년 이상이면 정밀검사 주기는 6개월로 짧아진다.
김 위원장은 “타 분야에서도 법률로서 내구연한과 안전점검 주기를 정하는 만큼 전기분야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전국 설명회에서 전기공사업계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법제화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과거 몇몇 국회의원이 법 개정을 추진하다 무산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준비해 국내 전기설비의 안전관리 수준과 한층 더 끌어올리고, 더불어 국민 안전의 체감도도 높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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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0여년간 전기공사 외길을 걸어온 김 위원장은 전기산업발전기본법 제정과 법정단체 설립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전기산업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안윤수 기자 |
40여년 전기공사 ‘외길’…업계 발전에도 헌신
김성관 위원장은 전기공사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1984년 맨주먹으로 삼진종합전설(현 삼진일렉스)을 설립해 40여년간 전기공사 외길을 걸으면서 회사를 업계 대표주자로 성장시켰다. 삼진일렉스의 2025 전기공사 시공능력평가액 순위는 전체 23위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해상풍력 등 신재생 EPC(설계ㆍ구매ㆍ시공)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업계 발전에도 헌신해왔다. 2016년 2월부터 6년간 제12∼13대 전기공사공제조합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차세대 전산시스템(e로움) 구축, 공정한 인사체계 확립, 영업점 통폐합, 찾아가는 서비스, 중대재해업무지원 서비스 등 굵직한 사업을 이뤄냈다. 특히 e로움은 ‘내 손 안의 조합’이란 표현처럼 보증신청부터 서류제출까지 모바일로 가능케 해 업무처리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김 위원장은 조합 이사장과 함께 15개 협단체로 구성된 전기관련단체협의회(전단협) 회장을 5년간 맡으면서 전기산업발전기본법 제정 및 전기업계 법정단체 설립의 산파 역할도 수행했다.
올해 1월 시행된 전기산업발전기본법은 전기산업계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법률로, 5년마다 전기산업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전단협 회장직에서 내려온 뒤에도 고문으로 활동하며 기본법 제정ㆍ시행에 큰 힘을 보탰다.
법정단체 설립도 가시화하고 있다. 대한전기협회를 법정단체로 전환하는 전기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이 지난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여기에는 대한전기협회를 비롯해 한국전기공사협회, 전기공사공제조합, 한국전기기술인협회 등 10여개 협단체들이 포진해 있다.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명실상부한 전기산업계의 ‘빅텐트’가 펼쳐지는 셈이다. 빅텐트의 명칭은 대한전기산업연합회(가칭)가 유력하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공공 중심의 에너지 산업에 민간 영역이 확대되면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체계와 중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전기산업발전기본법과 대한전기산업연합회”라면서 “기본법 제정ㆍ시행과 연합회 설립까지 힘들고 적잖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실을 내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전기공사업을 포함한 전기산업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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