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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색깔은 오직 사랑"...'기부천사' 고정수의 60년 조각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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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1-20 14:45:40   폰트크기 변경      
작품 기부에 불우이돕기 한평생....다음달 28일까지 갤러리 아트릭트서 '여체와 곰' 회고전

’예술에도 삶에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이 생전에 남긴 이 말을 평생 가슴 한편에 품고 살았다. 젊은 시절 유독 물건을 만들고, 조립하고, 색칠하기를 좋아면서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을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미국 유럽 등에 가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연구했다. 미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동시에 감사와 나눔을 함께 실천한다는 뜻에서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서로 공유하면 감성 에너지가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예술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꽂혔다.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경계하며, 관람객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으로만 보는 시각예술을 넘어 삶의 따뜻함을 온기로 나누려는 그의 실천적 태도는 이제 예술계 전반에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 조각예술의 거장 고정수의 이야기다.

원로 조각가 고정수가 최근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서  조형아트 인생 60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고정수스튜디오 제공

고 작가가 올해 조각 인생 60년을 맞아 맞아 큰 일을 벌였다. 다음달 28일까지 서울 반포동 갤러리 아트릭트에서 '여체와 곰'을 테마로 달고 회고전을 연다. 그는 사실적 여체 조각의 개척자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조선대 교수 및 조소과 학과장을 지내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1987년 전업 예술가로의 변신한 그는 고대 불상과 인체 미학을 결합해 한국적인 여성상을 형상화해 왔다. 1981년 국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 금호예술상(1985년), 선미술상(1986년), 문신미술상(2013년)을 잇달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고달픈 삶 속에서도 조각가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는 아무나 접근하기 어려운 ‘유별난 세계’라는 확신이 든다”고 강조했다.

평생 조각에만 몰두한 고 작가가 미술시장 불황에도 전시회를 연 이유는 뭘까. 그는 “예술과 공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이번 회고전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고 미술애호가들과 문화적 체험을 공유하며 공덕을 쌓고 싶다”고 설명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문화적인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세상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기존 전시와 달리 ‘아트 셰어링(예술 공유)’을 지향하며 그동안 작업한 작업을 시계열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 작가는 ‘아트쉐어링’에 대해선 누구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이다. 예전에 고향인 인천시에 자신의 평생 역작 약 40점을 기증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당시 미술계에 유례가 없던 대규모 작품 기증 사례가 됐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그가 주목을 받은 건 당연했다. 인천시는 그의 고귀한 뜻을 기려 감사패를 전달했다. 지금까지도 예술품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자산으로 환원한 이 사례는 공공예술의 모범으로 회자된다.

고 작가의 예술 공유사례는 계속 이어졌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에는 모교인 인천 신흥초등학교 강당에서 전시회를 열어, 마스크 속에 갇혀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어린 후배들에게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적인 체험 기회를 선물했다.

고씨는 조형예술 못지 않게 불우이웃에도 따듯한 손길을 내민다. 2000년대 초반 로타리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처음 경기도 하남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소망의집’을 찾은 그는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지닌 20명의 무연고 입소자들을 돕고 있다. 65평 규모의 자그마한 공간인 소망의 집에는 8세부터 59세까지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지닌 20명의 무연고 입소자들이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도 산타로 변신해 소망의 집을 찾았다. 입소생들을 위해 기저귀와 라면, 우유, 카스테라빵 등을 손수 들고 갔다. 원생들을 위해 떡이나 다과 등 성탄 선물을 준비한 여러 지인들도 동행했다. 부천시니어여성합창단은 소망의집에서 '재능기부콘서트' 형태의 무료공연도 펼쳤다. 또 자신의 작품인 곰을 형상화한 공기조형물 '약 오르지!(200×196×230cm, 2014)도 설치했다. 재미있는 표정의 공기 조형물이 설치되자 신체활동이 자유로운 원생들은 저마다 신기해 하며 만져보기에 바빴다.

2021년 양평의 복합문화공간 카포레에서 열린 50년 회고전 당시, 그는 코로나19로 후원이 끊겨 어려움을 겪던 소망의 집을 위해 수익금 500만원을 희사했다.

이번 전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9일 갤러리에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고 작가는 작은 음악회와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통해 서래마을 주민들과 미술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작품 세계와 소망의 집이 처한 상황을 직접 설명했다. 18년 전 소망의 집에서 소중한 인연을 맺은 후 고 작가를 '아버지'로 부르는 은혜도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고 작가는 은혜가 갓난아기 상태로 소망의 집에 입소했을 때부터 직접 목욕을 시켜주며 돌보아 왔다.

고 작가는 “틈틈이 작업 활동을 하면서 미술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며 “예술가들도 이제는 문화를 전도하는 공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물질적 허기뿐 아니라 문화적 허기도 채워주는 아트 전략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서야 한다는 게 그의 예술론이다. 그는 “사랑의 결정체로서 창의적 에너지가 넘쳐나는 예술이 이제는 일부의 향유물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즐거운 놀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고 작가의 60년 조각 여정은 단순히 돌과 흙을 깎아 형태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예술의 온기로 채워나가는 진정한 '사랑의 여정'이 됐다.

이처럼 ‘기부 천사’란 애칭을 달고 다니는 고정수의 기발하고 참신한 조형미학이 전시공간을 아우르며 쉼없이 이야기를 뿜어낸다. 누가 무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의인화된 곰 조각이다. 곰을 의인화해 사람들의 행복을 형상화한 작품 '밝은 세상', '반달곰 태권도 하다', '말뚝박기 놀이-1', '잊혀져 가는 유희' 등이 관람객을 반긴다.

고 작가는 “가끔 ‘여체를 조각하다가 웬 곰이냐’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예술 작품은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그는 고단한 현대인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이미지를 찾고자 무던히도 애썼다. 10년간 곰 조각에 매달려온 이유다. 예술은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곰 조각을 시작했다는 그에게 이제 곰은 단순한 모티브가 아니라 주제이며, 조각 인생 제2막의 새로운 생명줄이 됐다.

곰의 미세한 움직임을 잡아내기 위해 애쓰는 고씨는 관람객의 미소를 떠올리며 그동안 숨겨뒀던 손재주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작품 형태 역시 공공 조형물을 비롯해 부조, 테라코타 등 다양하게 제작해 관람객과의 친근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동물학자처럼 곰의 생태를 연구하고, 곰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어 조각에 적용하고 있다.

곰 조각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에는 우리의 모습처럼 귀여울 뿐만 아니라 위안과 힐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트’를 머리 위로 그리는 곰, 말뚝박기 놀이를 하는 곰, ‘사이좋게 지내자’며 딸을 안아주는 엄마 곰, 꿀단지를 안고 꿀을 먹는 곰 등 보기만 해도 익살스럽고 평화롭다. 그동안 작업했던 여체의 미학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가 깎아내 혼을 불어넣은 곰 조각은 편안하면서도 푸근해 가족애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선이 굵고 탄탄한 여체 조각들도 눈길을 붙잡는다. 그에게 여체는 단순히 작업의 모티브가 아니라 수행의 과정이다. 돌과 브론즈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한국적 여성상을 여지없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여성’ ‘고향’ ‘어머니’에 대한 의미를 따뜻함, 푸근함으로 치환하는 그의 재주가 놀랍다. 서구적인 8등신이 아니라 5~6등신의 비례를 고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여성 누드상들은 독특한 미감 뿐만아니라 특유의 생명감, 소박함까지 풍겨난다. 다이어트 열풍에 반기라도 들듯 허벅지와 엉덩이 부분은 늘 터질듯 풍만하다. 표정도 때론 환호하는 등 감정이 직접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조용하고 사색적이다.

최근 작업한 테라코타, 세라믹, 알루미늄 랩핑,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 사진 작품 등도 볼거리다. 호랑이, 다람쥐, 뱀들을 세라믹 접시 형태로 조형화한 게 이채롭다. 마치 아즈텍이나 마야문명의 유물처럼 강하고도 싱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또 3차원 입체 작품을 평면예술로 구현한 사진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미학으로 재탄생했다. 연출이나 조명 같은 촬영 테크닉보다는 피사체의 결정적인 순간과 영혼을 포착하는 데 주력했다. 빛과 그림자가 기하학적 대비를 이룬 빼어난 구도의 사진들은 오묘한 미감을 전한다.

야외전시장에는 1981년 '마지막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고 작가에게 구상 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자매Ⅱ’(브론즈, 160×90×60cm)가 우뚝 서 있다.

예술의 대중화를 추구하고 싶다는 고 작가는 “제 작품을 보면서 관람객들이 잠깐이라도 고뇌에서 벗어나 웃을 수 있다면 제 소임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세계와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라며 “찾는 이가 없어 고독하다면 그 역시 숙명”이라고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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