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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전ㆍ잡채ㆍ떡국… 말만 들어도 설레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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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2-10 06:00:15   폰트크기 변경      

조랭이떡국 = 개성만두 궁


원래 때가 되면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 종류도 많다. 생일 케이크도 밸런타인 초콜릿도 빼빼로도 그렇다. 특히 명절이 되면 그에 걸맞도록 세시(歲時) 음식을 챙긴다.

이제 곧 설, 대한민국에선 으레 떡국과 전 등 ‘귀한 음식’을 준비한다. 이를 세찬(歲饌ㆍ설 음식)이라 한다. 돈이 들고 손이 가서 평소에는 먹기 어려운 음식을 이때만큼은 차린다.

지금은 분식집에서도 파는 흔한 음식이지만 예전엔 귀한 떡국이었다. 이밥(쌀밥)에 고깃국이 최고던 시절, 고기 육수에 떡까지 넣었다. 쌀도 귀했는데 떡을 끓여 밥처럼 먹었으니 단연 호사를 부리는 셈이다.

옛날부터 전해진 음식이 떡국이다. 글자 그대로 병탕(餠湯)이라 했다. ‘정조차례와 세찬에 빠지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고,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했다’고 적었다. 동국세시기 등 문헌에 설날에 먹었다고 분명히 나온다. 이때 떡국에 든 떡은 ‘첨세병(添歲餠)’이라 했다. 뜻은 ‘한 살 더 먹는 떡’이다.


매생이떡국 = 토정황손두꺼비국밥집


마침 때도 한겨울이니 햅쌀로 길게 빚은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썰어 떡국을 준비했다. 육수로는 고기만 한 것이 없다. 소가 있으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중농책(重農策)을 위해 일상적 도축을 금지하는 바람에 소고기는 귀했다. 대신 눈밭에 나가 꿩을 잡아 육수를 냈다. 꿩고기를 찢어 넣고 떡국을 끓이면 좋았지만 잡지 못하면 닭을 썼다. ‘꿩 대신 닭’이다.

보통 떡국은 육수에 끓이고 꾸미로 간장에 조린 소고기, 지단, 실고추, 김가루 등을 올려서 낸다. 이는 오방색을 의미한다. 오행의 방위를 뜻하는 청ㆍ적ㆍ황ㆍ백ㆍ흑의 오방색(五方色)이다.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잡귀가 근접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세찬에는 항상 의미가 있다. 떡국의 떡은 맛도 좋지만 장수와 재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길게 늘여 뽑아낸 가래떡은 무병장수의 의미를 담았다. 동그랗게 썬 모양새는 엽전, 즉 재물을 상징했다. 쌀농사가 힘든 북쪽에선 만둣국을 끓였다. 복주머니처럼 생긴 만두도 건강과 재물을 뜻한다. 한해를 풍요롭고 건강히 보내라는 뜻은 세배 덕담 그 자체다.


전 = 나들목 빈대떡


차례상에 올릴 전도 부친다. 전(煎)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잔치 음식’이자 명절 음식이다. 격식 있는 상차림에는 빠뜨릴 수 없다.

지금이야 날이 궂을 때 막걸리 안주로 떠올리지만, 밀가루와 기름이 귀하던 시절엔 엄청난 고급요리였다.

전유어(煎油魚), 전유화(煎油花), 저냐 등으로 불리는 전은 이름에 조리법(지지다ㆍ煎)까지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기름을 두른 번철에 식재료를 넣어 지져낸(부쳐낸) 음식 종류를 총칭한다.

동그랑땡이라 불리는 ‘돈저냐’부터 파전, 배추전, 부추전, 김치전, 감자전, 파산적, 동태전, 육전, 간전, 처녑전, 방아(배초향)전, 송이전, 나물전(심지어 김밥) 등 웬만한 식재료는 모두 전으로 부칠 수 있다.

방법도 다양하다. 그대로 쓰거나 갈아서 뭉친 다음 부쳐내기도 한다. 감자전만 해도 꽤 다양한 조리법이 나온다. 감자만 갈거나, 밀가루를 섞고, 감자채를 썰어 다시 부치는 방법 등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

전(煎)은 부치는 것이고 ‘떡’을 뜻하는 병(餠)은 찌는 것이니 전병(煎餠)은 ‘부친 떡’이 된다. 김치전병, 또는 총떡이라 부르는 음식이다. 보통 안에 김치나 팥 등 소를 넣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일본 센베(煎餠)는 같은 한자를 쓰지만 과자다.

예외로 빈대떡(貧者餠)은 이름에는 떡이 들어가지만 사실상 ‘전’의 범주에 든다. 진달래 등 꽃을 올리고 지지는 화전(花煎)은 모양새가 떡과 유사하지만 기름에 지져 구우니 역시 전이라 할 수 있겠다.


전 = 나들목빈대떡


차례상에서 또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있다. 잡채다. 잡채(雜菜)는 갖은 채소와 고기를 잘게 썰어 볶은 후 삶은 당면을 넣고 버무린 음식이다. 이것저것 재료도 수월찮게 들고 손도 많이 간다. 잡(雜)자는 지금 우리말에서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양함(variety)을 의미하는 좋은 말이다.

원래부터 잔칫상에나 올랐던 음식이다. 400여 년 전엔 잡채를 잘 만들어 출세한 이도 있었다. 문신 이충(李沖ㆍ1568∼1619)은 광해군 때 집에서 만든 잡채로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이품 호조판서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광해군일기(정초본 138권)에 잡채상서(雜菜尙書)란 말이 등장한다. 이는 임금에게 잡채를 가져다 바치고 제수받은 상서를 이른다.

어쨌든 문헌에 따르면 당시의 잡채는 지금의 당면 잡채와는 퍽 다른 모양이다. 잠와유고(潛窩遺稿) 등 문헌에 따르면 숙주와 무, 도라지, 오이 등 갖은 나물을 익혀서 무친 요리가 잡채다. 여기다 식초를 넣어 먹는다고 적었다. 약 200년 뒤 정조 때에도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에도 거의 비슷하게 나와 있다.


잡채


다만 17세기(1670년쯤)에 등장한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수많은 나물과 함께 꿩고기와 버섯 등이 다양하게 들어간다고 했다. 요즘 잡채 형태와 비슷해졌다. 고종 때 김기수의 ‘일동기유(日東記遊)’에 등장하는 잡채는 고기와 채소를 가늘게 썰고 콩을 섞어 버무린다고 했다.

여기에 당시에 대량 생산으로 인기를 끌던 고구마 녹말 당면(唐麵)이 잡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924년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온 잡채 조리법에는 다양한 채소와 버섯, 고기, 해삼, 전복 등 식재료가 등장한다. 거기다 ‘잡채에 당면을 넣으면 좋지 않다’고 적었다. 이미 잡채에 당면이 들어가기 시작한 후라는 방증이다. 어쨌든 이 시기부터 당면은 우리식 잡채의 주재료가 됐고 요즘도 잡채에 당면을 빼면 섭섭해 할 이들이 적지않다.

세찬 음식은 다른 나라에도 존재한다. 다들 나름대로 의미를 담는 것도 비슷하다.

중국은 춘제(春節ㆍ설)에 만두(餃子ㆍ자오쯔)를 빚는다. 가는 해와 새해가 엇갈리는 설날을 자오쯔(角字)라 하는데 공교롭게도 만두와 발음이 같은 까닭이다. 설에는 부엌에 불을 쓰지 않기 때문에 따로 조리를 하지 않고 미리 만들어 둔 편육(냉채)과 만두, 떡을 먹는다. 이 떡이 바로 ‘녠가오’인데 이 역시 ‘새해에 좋은 일이 일어나라’는 녠가오(年高)와 발음이 같다.

이제 음력 설은 따로 쇠지 않는 일본은 양력 1월1일에 전통 세찬인 오세치(御節) 요리를 먹는다. 각각의 의미를 지닌 음식을 찬합에 모양을 내서 담고 연휴 내내 먹는다. 새우(海老)는 장수를 뜻하고 말린 청어알 가즈노코(の子)는 자손을 뜻한다. 밤을 달게 절인 구리킨톤(栗きんとん)은 황금색이라 재운을 상징한다. 콩을 조린 구로마메(黑豆)는 열심히 산다는 근면성실을 뜻하고 다시마 말이 곤부마키(昆布き)는 ‘기뻐하다’라는 뜻의 요로콘부(喜ぶ)가 다시마(昆布)와 음이 같아 기쁨을 가져다준다며 오세치에 꼭 넣는다.

이처럼 새해를 맞는 일은 지구촌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설을 기념하려 맛있는 상을 차리고 가족끼리 모인다. 갓 떡을 뽑아낸 향기를 맡고 지지는 소리만 들어도 벌써 설렌다. 자꾸 나이만 먹는데도 설날이 반가웠던 이유는 맛있는 세찬 요리 덕분이었다.


글ㆍ사진=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떡ㆍ전ㆍ잡채 맛집]


◇조랭이떡국=서울 인사동의 노포 ‘개성만두 궁’은 이제 대표적 개성 음식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미슐랭 가이드에 오를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개성 토산 음식인 눈사람 모양 ‘조랭이떡국’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졸깃졸깃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다. 이북 음식답게 심심하고 담백한 사골 육수를 쓴다. 직접 빚은 고기만두를 함께 넣은 떡만둣국으로 즐기면 풍미가 한결 좋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11-3


조랭이떡국 = 개성만두 궁


◇매생이굴떡국=매생이 특산지 전남 장흥군에서는 요즘 매생이굴떡국을 판다. 토요시장 ‘토정황손두꺼비국밥집’은 국밥도 팔고 장흥 한우삼합도 차리는 집인데 겨울엔 매생이와 굴, 키조개 내장까지 넣고 끓여 낸 매생이국이 인기다. 바다 향기를 고스란히 품은 부드러운 매생이가 절로 식도를 타고 넘어 들면 오감을 만족시킨다. 얇은 매생이가 골고루 퍼져 시원한 맛을 보태는 진한 국물은 차진 떡에도 잘 스며들 정도로 풍미가 좋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토요시장2길 3-9.



매생이떡국 = 토정황손두꺼비국밥집


◇나들목 빈대떡=여전히 ‘핫’한 ‘망리단길’ 망원동에는 유명한 전집이 있다. 상호는 ‘나들목 빈대떡’이지만 그냥 망원동 전집으로 통한다. 커다란 번철을 두고 주문 즉시 수시로 부쳐낸다. 빈대떡이며 김치전, 돈저냐(동그랑땡) 등 안줏거리로 딱 좋다. 모둠전에는 주문하면 동태전, 고추전, 깻잎전, 부추전, 애호박전, 돈저냐 등이 들었다. 해물이 가득한 해물파전도 잘 나간다. 향긋한 쪽파 사이에 오징어와 조개가 푸짐하게 들어 든든하다. 코다리찜, 오징어초무침 등 안줏거리도 좋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33.


고추잡채 = 홍복


◇고추잡채=서울 남대문 인근에서 중식 연회요리를 잘하기로 소문난 식당이 ‘홍복’이다. 코스와 단품 메뉴를 다양하게 갖췄다. 아삭한 피망을 매콤하게 볶아낸 고추잡채도 맛이 좋다. 특유의 강한 화력으로 고기와 채소를 빠르게 볶아낸다. 함께 집어먹을 때 식감 대비가 환상적이다. 고기에 피망 향이 잘 배어들어 깔끔한 맛을 낸다. 1∼5층까지 홀과 연회석이 마련돼 있어 연휴 모임하기에도 적당하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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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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