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오너, 중처법 처벌 과도”… 사법리스크 일단 해소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첫 사고로 기록된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지는 경영책임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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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이 10일 오후 의정부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공판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의정부지법 형사단독3부 이영은 판사는 10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3년 3월 기소 이후 약 3년 만이다.
이 판사는 정 회장에 대해 “삼표그룹의 규모나 조직 등에 비춰 볼 때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의무를 구체적ㆍ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는 경영책임자, 즉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2022년 1월29일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는 토사 붕괴로 근로자 3명이 매몰돼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지 이틀 만이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2022년 6월 이종신 당시 삼표산업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ㆍ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는 노동청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경찰이 각각 수사한다. 기소 여부는 검찰이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2023년 3월 검찰은 “경영책임자인데도 붕괴 관련 유해ㆍ위험요인의 확인ㆍ개선에 관한 업무 절차와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대비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는 등 법률이 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정 회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채석산업에 30년간 종사한 전문가인 정 회장이 사고 현장의 위험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 업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보고받는 등 실질적ㆍ최종적 결정권을 행사했고, 그룹 핵심 사업인 골재채취 관련 주요 사항을 결정했다는 이유였다.
재판 과정에서 정 회장 측은 “지주사와 정 회장은 그룹의 전반적인 방향만 설정했을 뿐 실질적인 최종 의사결정은 각 사업 부문의 대표이사가 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심 공판 당시 정 회장도 최후 진술에서 “법적 책임 소재를 떠나 우리 사업장의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그룹사는 안전 업무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고 실질적인 계열사의 경영과 안전은 대표이사의 권한으로 이뤄졌음을 잘 살펴달라”고 호소했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정 회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검찰과 달랐다.
이 판사는 “피고인이 각 그룹 부문별 정례 보고 등에 참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표자 또는 담당 임원 등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리기도 한 사실은 인정이 된다”면서도 “각종 보고나 회의가 삼표산업 등의 경영책임자로서 경영상 주요 현안 등을 보고받고 안전보건 업무를 포함한 사업을 총괄해 경영상 결정을 내리는 절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종신 전 삼표산업 대표이사에 대해서도 이 판사는 “피고인이 양주사업소 야적장에서 법령에 따른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했거나, 그러한 조치 없이 작업이 진행되는 사실을 알았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삼표산업 법인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일부가 인정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아울러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삼표산업 본사와 양주사업소 등 현장 관계자 4명에 대해서는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적극적인 안전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며 유죄가 선고됐다. 삼표산업 본사 안전책임 담당은 징역형의 집행유예, 양주사업소 관계자 3명은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원청 기업의 CEO(대표이사)나 CSO(Chief Safety Officerㆍ최고안전보건책임자)가 아닌, 그룹 오너가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사례는 정 회장이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하다.
삼표그룹 외에도 여러 대기업 계열사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지만, 대부분 해당 계열사의 CEO나 CSO가 기소되는 선에서 그쳤다.
이 때문에 정 회장 기소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기업이 아무리 조심하고 대비하더라도 안전사고 발생을 완벽하게 막기는 불가능한 판에 그룹 오너까지 경영책임자 범위를 확대해 처벌한다면, 결국 기업의 안전 개선 활동이 오히려 저해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졌다.
기업들이 실질적인 안전 개선 활동보다는 안전 관련 업무조직 범위를 최소한으로 축소하거나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를 피하기 위한 ‘페이퍼워크(서류작업)’에만 집중하는 등 사법 리스크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만 골몰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한편 정 회장 측 변호인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ㆍ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광장이 함께 맡았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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