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광고 기재 누락… 4년 뒤 시정명령
오피스텔ㆍ생활숙박시설 등 중심
분양계약 해제 소송에 제동 걸릴 듯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생활숙박시설의 분양광고에 일부 내용이 빠졌다는 이유로 내려진 지방자치단체의 시정명령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건축물분양법 위반이 있었더라도 이미 바로잡았다면 뒤늦은 시정명령은 위법하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은 분양계약 해제를 둘러싼 ‘기획소송’이 건설ㆍ부동산 업계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상황에서 중요한 법적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정명령 전에 정당하게 시정 조치가 이뤄졌는데도 불구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길은 이제 막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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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분양사업자인 A사가 관할 지자체인 B시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최근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에서 헌법이나 법률, 대법원 판례 위반이나 중대한 법령 위반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하지 않으면 대법원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판결로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A사는 관리형 토지신탁계약 방식으로 B시에 생활숙박시설을 신축ㆍ분양했다. A사는 2020년 10월 분양신고를 거쳐 분양광고를 했지만, 신고 당시 광고안에는 건축물분양법상 필수 기재사항인 용도지역ㆍ지구단위계획 수립 여부와 교육환경보호구역 설정 여부 등이 누락돼 있었다.
이후 B시는 분양광고 시점에서 약 4년이 지난 2024년 8월 사전통지를 거쳐 그해 10월 건축물분양법 제9조에 따라 “누락 사항을 시정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A사는 시정명령이 내려지기 한 달 전인 2024년 9월 분양광고를 했던 간행물에 정정 내용을 게재하고 홈페이지 공지, 수분양자 문자 통지, 분양사업장 공고문 부착 등의 조치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이에 A사는 “시정명령 처분 당시에는 이미 위법상태가 해소됐거나 위반행위의 결과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행정소송에 나섰다.
1ㆍ2심은 모두 “시정명령 처분은 위법하다”며 A사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분양광고에 건축물분양법 일부 사항을 누락한 법 위반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행정청의 처분시점에 위반행위의 결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의 시정을 명하는 내용의 시정명령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A사의 시정공고를 통해 불특정 다수와 수분양자에게 분양광고의 건축물분양법 위반 여부와 위법 상태의 해소 여부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는 이유다.
B시는 ‘분양계약을 체결한 수분양자에게는 위반 결과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건축물분양법은 이미 분양이 이뤄진 경우를 상정해 수분양자에 대한 시정명령을 이행하고 위반행위의 결과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명시하고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B시는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번 판결은 최근 오피스텔이나 생활숙박시설 등 분양형 부동산을 중심으로 분양계약 취소나 해제ㆍ해지소송이 전국적으로 폭증하는 상황에서 시정명령 전에 이미 시정 조치가 이뤄진 경우까지 문제 삼아 해약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 전망이다.
통상 분양계약서에는 ‘분양사업자가 건축물분양법 제9조에 따라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를 약정 해제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데, 분양받은 건축물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입주 시점에 시세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계약을 해제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보고 분양광고나 계약서의 문구에서 허점을 찾아 시정명령을 내리게 만드는 식이다.
게다가 지난해 말 “사업자가 건축물분양법 제9조에 따른 시정명령을 받으면 위반의 경중과 관계없이 계약자에게 해약권이 발생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수분양자들의 집단 해약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건설사들은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와 분양 실적 저조로 분양대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분양계약 해제를 둘러싼 기획소송까지 겹쳐 골머리를 앓고 있다.
A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세종의 최철민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건축물분양법상 시정명령 제도에 있어서도 시정조치가 완료된 이후에 내려진 시정명령은 위법하다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라며 “통상 분양계약서에는 시정명령, 과태료, 벌금 이상의 형이 약정해제 사유로 포함돼 있고, 대법원이 최근 시정명령이 내려진 경우 그 위반사항의 중대성 여부를 불문하고 약정해제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상황인바, 이번 판결을 통해 ‘위법한 시정명령은 약정해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가 확립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사후적으로 시정 조치가 완료됐는데도 수분양자들이 민원을 제기해 무조건 시정명령을 내리게 만들고, 이를 해제 사유로 주장하는 방식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는 게 최 변호사의 설명이다.
다만 최 변호사는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분양계약 해제 사유가 사실상 제한된 만큼 건축물분양법 위반을 이유로 한 형사 고소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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