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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쌩얼'에 스며든 인간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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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2-23 15:17:22   폰트크기 변경      
서양화가 김란 노화랑서 다음달 5일까지 개인전


젊고 유망한 서양화가 김란은 어린 시절 도시를 무던이 그리워했다. 대도시에 우뚝 선 크고 작은 건물들이 예쁘다고만 생각했다. 청소년기 도시에 염원과 갈망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보고 싶었다. 외삼촌(윤병락)이 옆에서 그림을 배우며 가끔 찾은 대구 도심 풍경을 먼발치에서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화첩에 옮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구예술대를 졸업한 그는 도심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실제 풍경을 비틀어 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도시의 내면을 꾸준히 읽어내기 시작했다. 도시의 ‘쌩얼’(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란 의미에서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을 캔버스에 녹여냈다. 도시의 매력적인 순간을 가장 예술적인 감성으로 치환했다.

김란의 'LE -lL 02'                                                                                                  사진=노화랑 제공

지난 10여년간 도시의 정체성을 탐구해 온 김란의 개인전이 지난 12일 시작해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린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여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드로우 백(Thow back)’. 전국 대도시의 야생적인 모습을 비롯해 전주의 한옥마을, 놀이 공원을 사실적 형태로 잡아낸 근작 30점을 걸었다. 전통 색감을 더해 명상적 화면을 창조한 그는 다양한 미디어 재료와 아크릴 등 서양 재료를 다양하게 수용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로 도심의 풍경을 그려온 작가는 첨단 산업사회를 변주한 날것 그대로의 도시의 개념을 화면에 풀어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도시에 대한 경외와 예찬을 강조하던 시기를 지나 도시설계와 건축의 본질에 한층 더 충실해지고 싶어서다. 작가는 “생성과 소멸, 진화와 파괴 등 상반된 개념 자체를 도시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화면에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걸린 그의 ‘도시’ 시리즈는 도심 건물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투영됐다. 작가는 도시가 딱닥한 건축물의 집합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의 유기적 공간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의 한옥풍경은 과거와 현재가 가장 밀접하게 교감하는 지점으로 도시의 가면을 벗고 욕망을 분출하는 순간을 잡아냈다. 한국 전통 색감을 더한 화면 속 풍광은 마치 바람처럼 일렁이며 기운 생동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눈에 보이는 실제 풍경을 담은 작품이지만 사실성과 더불어 건축학적 미학으로도 읽힌다.

김란의 작업은 이처럼 익숙한 풍경 속에 숨겨진 기억의 잔영을 되살리는 수행적 기록이다. 아크릴 물감을 살오라기 같은 선으로 짜내 반복적으로 쌓아올린 화면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이 흐름으로 엮는 치유의 망이다. 그가 엮어내는 빽빽한 도시의 집들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그 안에 스민 개별적 우주와 따스한 체온을 머금은 채 관람객에게 말을 건넨다.

제작 기법도 색다른다. 캔버스에 건물의 이미지를 그린 뒤 물감과 모르타르 미디엄을 혼합해 채색하고, 그 위에 실처럼 얇은 선들을 겹겹이 쌓아올린다. 김씨는 “색을 단순히 입히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성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수 만 번의 선을 중첩한다”며 “인고의 시간을 시각적 촉각으로 치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복되는 과정과 시간의 축척을 바탕으로 일종의 행위 예술인 셈이다.

미술평론가 김윤섭 씨는 “김란 작가가 화면 속에 쌓아올린 선들은 단절된 순간들의 힘을 넘어 과거가 현재 안으로 끊임없이 침투하며 만들어 내는 유기적인 생명력을 탄생시킨다”고 평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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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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