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 글로벌 점유율 0.8%
1조원대 ‘앵커 기업’ 5곳 육성 과제
수요처 연계 삼각동맹 구축 주문
판교 클러스터 2030년 완성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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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호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은 <대한경제>와 인터뷰에서 “10년내 1조원 매출을 내는 K-팹리스가 5곳 정도 나와야 의미있는 생태계가 형성된다”며 정부의 지원을 주문했다. /사진: 안윤수 기자 ays77@ |
[대한경제=이계풍 기자] “글로벌 시장 점유율 0.8%의 미미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AI(인공지능) 반도체라는 날개에 기존 범용 반도체라는 몸통이 함께 커야 10년 뒤 매출 1조원대 앵커 기업 5곳이 탄생하는 ‘K-팹리스’의 기적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지난달 한국팹리스산업협회 제3대 회장으로 취임한 김경호 회장은 〈대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반도체 설계 산업의 냉혹한 현실과 이를 타개할 ‘투트랙’ 필승 전략을 제시했다. 198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가전, 메모리, 시스템LSI, 정보통신 등 4대 사업부를 모두 거친 28년 ‘삼성맨’ 출신인 그는 퇴직 후 학계와 산업계 현장을 누비며 쌓은 디테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협회의 키를 잡았다.
◇메모리 강국 이면에 가려진 설계 불모지
김 회장은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지형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정의했다. 메모리는 세계 1등이고 파운드리 역시 삼성이 견고한 2위를 지키고 있지만, 정작 핵심인 설계(팹리스)는 글로벌 점유율 0.8%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께 보고된 0.8%라는 숫자는 매우 정확한 수치일 것”이라며 “소부장이 2.6%대 마켓 셰어를 가진 것에 비하면 팹리스는 언급조차 되기 민망할 정도로 비중이 작다”고 지적했다. 이어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대기업이 주도하며 기술력과 자금력을 갖췄지만, 팹리스는 인큐베이팅 없이는 고사할 위기”라며 특단의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가 ‘K-반도체 전략’을 통해 팹리스 규모를 10배 키우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김 회장은 그 방법론으로 ‘균형 잡힌 성장’을 강조했다. 최근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는 전체 200여 개 팹리스 중 10% 미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나머지 90%는 이미지센서, DDI(디스플레이구동칩),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등 기존 범용 반도체를 하는 기업들”이라며 “AI 반도체는 기술적 우위를 앞세워 초격차 트랙으로 가되, 범용 반도체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용인하며 상용화 트랙으로 밀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3000억원대 매출을 내는 중견 기업들이 10년 내 1조원 매출을 달성해 글로벌 50위권 안에 5개사 정도는 포진해야 의미 있는 생태계가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팹리스 기업 가운데 글로벌 매출 기준 상위 20위권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LX세미콘이 유일하다.
◇수요기업-팹리스-정부 ‘삼각 동맹’ 성공 방정식
그가 벤치마킹 모델로 꼽은 곳은 대만과 중국이다. 이들 국가는 수요 기업(세트 업체)과 팹리스, 파운드리가 끈끈하게 결합해 서로를 인큐베이팅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김 회장은 “제일 중요한 성공 공식은 수요 기업과 팹리스가 붙어 무엇을 만들지 협의하고, 테스트 베드를 제공하며 채용해 주는 구조”라고 단언했다. 그는 “국내 세트 업체들은 외국산 칩을 그냥 가져다 쓰면 되는데 왜 굳이 돈을 들여 국내 팹리스와 공동 개발하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며 “이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제언했다. 세트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팹리스가 기획할 때 정부가 연구개발(R&D) 자금을 매칭 지원해 리스크를 낮춰줘야 한다는 논리다.
김 회장은 협회가 정부와 산업계 사이에서 실질적인 정책 창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최적의 입지적 강점을 갖추고 있음을 강조했다. 현재 협회는 텔레칩스, 픽셀플러스, 가온칩스 등 국내 대표 팹리스 기업들이 대거 포진한 ‘팹리스의 산실’ 제2판교에 자리를 잡고 회원사들과 긴밀히 호흡하고 있다. 전체 200여개 팹리스 중 140여개사가 협회 회원사다. 김 회장은 “바로 인근에 약 1만평 규모의 팹리스 특화단지로 개발되는 제3판교 테크노밸리가 조성 중”이라며 “정부와 경기도에 현장의 디테일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조언하며 2030년까지 거대한 팹리스 클러스터를 완성해 나가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어설명> 팹리스(fabless)
팹리스는 제조공장(fab) 없이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팹리스가 칩을 설계하고 파운드리(위탁생산)가 이를 생산하는 구조다.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이미지센서,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 다양한 시스템반도체를 팹리스 기업들이 주로 설계한다. 과거에는 명령을 수행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국한됐지만, 엔비디아가 AI 가속기에 특화된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설계하면서 메모리반도체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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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풍 기자 k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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