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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의 미학”…올 프리츠커상에 ‘스밀얀 라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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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3-16 11:00:39   폰트크기 변경      
“인간경험의 본질 탐구” 호평

칠레 산티아고 출생 이민 2세

채석장 바위로 만든 식당 등

풍경ㆍ재료ㆍ시간의 관계 중시


2026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스밀얀 라딕. 칠레 산티아고 출생. / 사진=하얏트재단.


[대한경제=전동훈 기자] 올해 건축계 최고 권위의 상인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로 칠레 건축가 ‘스밀얀 라디치 클라크(Smiljan Radic Clarke)’가 선정됐다. 풍경과 재료, 시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해 온 작품 세계가 높이 평가됐다는 분석이다.

라디치는 1965년 칠레 산티아고 출생으로, 크로아티아 출신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다. 건축과의 인연은 14세 때 시작됐다. 미술 교사가 낸 과제로 건물을 설계해 본 경험이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면서다.

이후 칠레 가톨릭대학과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대학 시절 조각가 ‘마르셀라 코레아(Marcela Correa)’를 만나 결혼했다. 라디치는 1995년 산티아고에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사무소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라디치는 대형 조직 중심으로 재편된 현대 건축계 흐름과 거리를 뒀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사무소를 유지하며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건축적 해석을 모색하는 작업 방식을 이어왔다. 반복 가능한 고유의 스타일을 구축하기보다 장소의 조건과 프로그램에 맞춘 개별적 접근을 중시해 온 영향이다.

작업 범위는 개인 주택에서 문화시설, 공공건축,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60여 개 프로젝트를 통해 풍경과 빛, 구조, 재료 사이의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는 평가다.

라디치 건축은 대상지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환경에 머물지 않는다. 역사와 사회적 관습, 정치적 상황이 겹겹이 쌓인 복합적인 맥락을 포함한다. 건축이 여러 층위와 긴밀하게 맞물리며 구현된다는 철학을 반영한 결과다.


‘레스토랑 메스티조(Restaurant Mestizo)’ 전경. /  사진=Gonzalo Puga.


산티아고의 ‘레스토랑 메스티조(Restaurant Mestizoㆍ2006)’는 라디치의 접근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그는 채석장에서 가져온 거대한 바위를 구조체로 활용해 건물을 지탱하도록 설계했다. 건축과 풍경의 경계를 흐리며 자연환경 속에 스며드는 공간 구성이 특징이다.

칠레 중부 해안에 자리한 ‘피테 하우스’(Pite Houseㆍ2005) 역시 장소에 대한 라디치의 해석을 반영한 프로젝트다. 바위투성이 해안 지형 위에 세워진 주택으로, 강풍과 강한 햇빛을 고려해 건물 방향과 공간 구성을 조정했다. 테라스와 옹벽을 통해 태평양의 수평선을 조망하도록 계획한 점도 돋보인다.

특히 라디치의 건축은 화려한 조형을 앞세우기보다 구조적 합리성과 시공의 논리에서 힘을 찾는다. 콘크리트, 돌, 목재, 유리와 같은 재료는 각각의 물성과 하중을 고려해 배치되고, 그 과정에서 무게와 빛, 소리, 공간의 감각이 함께 조직된다. 건물은 단순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내부에는 치밀한 공학적 계산과 판단이 숨어 있다는 설명이다.

재료에 대한 실험정신은 라디치 건축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이다. 2014년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를 위해 설계한 파빌리온(가설 건축물)은 거대한 석재 위에 반투명 유리섬유 셸을 얹은 형태로 주목을 받았다. 빛을 부드럽게 걸러내면서 공원 풍경과 느슨하게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었다.


스밀얀 라딕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전경. / 사진=Iwan Baan.


칠레 콘셉시온에 자리한 ‘비오비오 지역 극장(Teatro Regional del Biobioㆍ2018)’에서는 절제된 재료 사용이 눈길을 끈다. 반투명 외피를 통해 빛과 음향을 조절하며 건축이 하나의 공간적 서사를 형성하도록 설계됐다.

제22회 칠레 건축 비엔날레에 설치된 작품 ‘과테로(Guateroㆍ2023)’도 같은 맥락의 작업이다. 공기 압력으로 형태를 유지하는 공압 구조를 적용한 설치물로, 반투명 막이 공간을 감싸며 내부 공간을 이룬다. 빛과 소리,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관람객이 몰입하는 감각적 환경을 만든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라디치는 재료적 실험과 문화적 기억,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창적인 건축 세계를 구축했다”며 “확실성을 과시하기보다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건축을 통해 인간 경험의 본질을 탐구했다”고 평가했다.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설치미술 ‘과테로(Guatero)’ 모습. / 사진=Cristobal Palma.


라디치는 건축이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 사이에 놓인 것이라고 말한다. 수백 년 동안 태양 아래 서 있는 거대한 구조물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연약한 구조물 사이 어딘가에 건축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라디치는 “건축은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이 교차하는 긴장 속에 있다”며 “그 사이에서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무심히 흘러가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경험을 만들어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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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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