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근우 기자] #1. “화주 입장에서 납기 일정을 맞추려면 할증료에 보험료 인상분까지도 일단 선사가 요구하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동향 담수화 플랜트 부품을 수출하는 A사는 최근 선사로부터 TEU당 2000달러의 긴급분쟁할증료(Emergency Conflict Surcharge)를 청구받았다. 평소 운임이 1500~2000달러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갑자기 운임이 2배 이상 폭등한 것이다. 심지어 선적 전 대기중이던 물량에도 할증료가 부과됐다.
#2. “내려진 화물을 어떻게든 운송하려면 내륙운송비를, 보관 또는 반송하려면 보관비나 반송비를 내야합니다. 현지 운송을 하고자 해도 현지 항만 상황, 트럭킹 업체, 비용 등 정보가 깜깜이라 어려워요.”
산업용 플라스틱 자재를 생산하는 B사 역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화물이 계류하거나 아랍에미리트(UAE) 코르파칸, 오만 살랄라ㆍ소하르 등 대체항에 강제 하역되면서, 예상치 못한 내륙운송비와 보관료 부담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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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항에 쌓여있는 컨테이너. /사진: 연합뉴스 |
이처럼 중동사태 장기화로 인해 수출 중소기업의 물류 부담이 임계치에 도달했다. 석유화학, 부품ㆍ자재 등 산업계에서는 정부의 전방위적 물류비 지원 대책 마련을 바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5일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중동 사태 발발 이후 현재까지 193개사로부터 469건의 수출입 물류 애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기업의 주요 애로사항으로는 ‘해상운송 중단 등 운항 지연(129건)’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급격한 운임상승 및 할증료 부과(117건)’ 등의 순이었다. 전체의 절반 이상(52.4%)이 운송중단 및 운임급등 피해를 호소한 것이다.
중동사태로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이는 고스란히 단가에 반영되고 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는 훌쩍 넘기고, 해상운임은 전쟁 직전보다 2~4배 가량 뛰었다.
특히 업황 부진으로 구조조정중인 석유화학업계의 고충이 심했다. 주원료인 나프타 수급이 막힌데다 유가까지 오르자, 가격이 폭등했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나프타의 경우 중동산 의존도가 워낙 높은데다 고유가와 물류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원가 절감 방안을 다방면으로 모색하고 있으나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국내 3대 석화 클러스터 중 하나인 여수산업단지에서는 나프타 원료 수급 차질로 공장 가동 중단이 현실화했다. 다음달 이후에는 공장 연쇄 셧다운 가능성이 커졌다.
LG화학 여수공장의 경우 지난 23일부터 나프타 도입이 어려워지면서 연간 8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여천NCC 3공장인 프로필렌 전용 공장(OCU)도 멈춘 상태다. 롯데케미칼은 예정된 설비 정비(TA)를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다.
여수산단에 입주한 C사는 현재 수출물량의 절반 이상을 인접한 광양항이 아닌 부산항을 통해 우회해 내보내고 있다. 부산항에서는 미주, 유럽, 중동 등으로 나가는 원양 노선이 70여개나 있지만 광양항은 북미 3개, 유럽 1개, 인도 2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선사는 물량이 적어 광양항 증편이 어렵다고 하고, 화주는 노선이 부족해 가까운 광양항을 이용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며 “광양항 원양 노선이 늘어난다면 산단 내 기업의 물류 효율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참고로 부산항 대신 광양항을 이용한다면, 연간 840억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다는게 무협의 추산이다. 이에 광양항 활성화 등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이외에도 기계ㆍ부품사는 선사의 예약 취소, 선적 거부, 운송 중단ㆍ회항, 수출입 대금 결제 지연 및 취소 등을 토로했다.
D사 측은 “물량이 적은 소량화물(LCL)은 선박 예약이 아예 불가하다”며 “기존 운송 예약건도 스케줄이 모두 취소됐다. 화물을 다시 공장으로 회수하는 등 왕복 내륙운송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업체 E사는 “선박이 해협 인근에서 피항하며 제품 인도가 되지 않아 수출대금 결제 무기한 연기됐다”며 “생산완료된 제품은 선적예약이 불가해 창고에서 대기중이다. 자금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한편 무협은 지난 3일부터 ‘수출기업 물류애로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고 있다. 현장에서 모은 애로와 건의사항은 10여차례에 걸쳐 정부 비상대책회의에 전달하기도 했다.
무협은 △내륙운송비ㆍ보관료ㆍ반송비 포함 물류비 지원 범위 확대 △기업 신용등급 기준 등 정책금융 지원 요건 한시적 완화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무협 관계자는 “물류 병목이 1개월간 이어지면 해상운임 인상 여파는 3개월가량 지속되는 점을 고려해달라”며 “뒤늦게 피해를 본 기업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화업계 지원방안으로는 △전국 항만 내 위험물 무료 장치기간 연장(3→5일) △선사의 광양항발 컨테이너 원양노선 증편 유인을 위한 인센티브 예산 증액 등을 요청했다.
이근우 기자 gw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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