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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공공성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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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4-03 09:28:04   폰트크기 변경      

어떤 단어들은 그 자체로 방패가 된다. ‘공공성’이 그렇다. 이 단어 앞에서는 반론이 쉽지 않다. 반대하면 이기주의자가 되고, 의문을 품으면 개발 투기꾼이 된다. 그래서 아무도 큰 소리로 묻지 못한다. 정부가 말하는 공공성이, 정말 공공을 위한 것인지 말이다.

재건축ㆍ재개발 현장에서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다. 임대주택은 좋은 자리에 넣어야 하고, 일반분양과 임대를 함께 추첨해야 한다. 또 담장을 없애고 단지를 외부에 개방하는 게 순리적이라는 말이다.

사실 강남ㆍ서초ㆍ송파 같은 선호 지역은 집값이 워낙 높다 보니 임대주택이 없으면 저소득 가구는 처음부터 그 동네에 발을 들일 방법이 없다. 도심권 내 주택공급 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제다. 그렇기에 임대주택을 좋은 위치에 배정하고 공개 추첨을 의무화하는 것은 그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어보자는 시도로 읽힌다.

하지만 그 말들의 무게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전가된다. 수십년을 버텨온 사람들이다. 재건축을 기다리며 이사도 못 가고, 수리도 미루고, 그냥 버텨왔다. 그러다 공공성이라는 이름의 청구서가 그들 앞으로 날아드는 셈이다.

실제 현장과의 간극은 크다. 지난 3월 국토부 고시 기준 기본형 건축비는 ㎡당 222만원이다. 임대주택 인수가격은 그 80%인 약 178만원이다. 반면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의 실제 공사비는 ㎡당 3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인수가격과 실제 공사비 사이에 40%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전용 59㎡ 기준으로 따지면 정부가 사들이는 임대주택 가격은 약 1억원 수준이지만, 실제 짓는 데 드는 비용은 2억원에 육박한다.

그 차이는 조합원 분담금과 일반분양가로 전가된다. 공공성의 이름으로 요구한 임대주택의 비용을 결국 조합원과 일반 분양자가 나눠 짊어지는 구조다. 인수단가의 현실화 없이 소셜믹스 의무만 강화한다면, 공공성의 청구서는 더 무거워질 뿐이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방식이다. 공공성이 정말 공공을 위한 것이라면, 그 비용 역시 공공이 나눠야 한다. 임대주택을 좋은 위치에 배치하고 싶다면, 그에 따른 사업성 손실을 행정이 실질적으로 보전해야 한다.

단지 개방 문제도 다르지 않다. 개방형 단지가 주는 이점이 없는 건 아니다. 단지를 관통하는 보행로는 도시의 보행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잇고, 단지 내 녹지와 공원이 외부에 열리면 도시 전체의 녹지 접근성이 높아진다. 서울처럼 아파트가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에서 단지 개방은 공공 공간 부족 문제를 푸는 현실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혜택을 단지 밖 시민들이 누리고, 비용은 단지 안 주민들이 낸다. 외부인 출입이 늘면 소음과 쓰레기, 보안 공백 문제가 따라온다. 관리비는 오르고, 프라이버시는 줄어든다.

거주민의 안전보다 통행의 공공성이 앞서야 하는가. 누군가의 집이 다른 누군가의 지름길이 되어야 하는가. 공공의 편익을 위해 특정 주민에게 불편을 전가하는 구조라면, 그것은 공공성이 아니라 부담의 외주화다.

빛나는 이름일수록, 그 이면을 더 꼼꼼히 살펴야 한다.

한형용 도시정비팀장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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