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심사에서 194건 ‘각하’
재판소원 후속절차도 공백
판ㆍ검사 처벌 ‘법왜곡죄’도
망신주기식 고소 남용 우려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의 핵심 축인 재판소원 제도와 법왜곡죄 도입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일선 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법원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은 높은 문턱과 후속 절차 공백 문제로, 고의로 법을 왜곡해 적용한 판ㆍ검사 등을 처벌하기 위한 법왜곡죄는 ‘망신주기’식 고소ㆍ고발 등 남용 우려로 각각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혼란을 최소화하고 제도를 안착시키려면 명확한 기준 정립과 절차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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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사진: 대한경제 DB |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전날까지 한 달간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사건은 모두 384건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간 4600건 안팎의 재판소원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난해 접수된 전체 헌법소원 사건(3066건)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하지만 본안 심리를 위한 첫 관문인 사전심사 단계를 넘어선 사건은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다.
헌재는 사건이 접수되면 헌법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 판단하고 청구가 부적법하면 전원재판부의 본안 심리 없이 사건을 각하하는데, 지난 7일까지 세 차례 사전심사에서는 194건이 모두 각하됐다. 대부분 ‘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게 명백하다’는 이유였다.
이 같은 기조는 사실상 ‘4심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헌재가 재판소원 대상을 엄격히 선별해 사법질서의 혼란을 막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헌법재판소법상 재판소원은 법원에서 확정된 재판이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헌법ㆍ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헌법ㆍ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재판소원 도입 취지였던 ‘기본권 침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요한 헌법적 쟁점을 가진 사건까지 초기 단계에서 걸러지면 제도 도입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이유다.
재판소원 후속 절차의 공백도 문제다. 재판소원이 헌재에서 인용될 경우 법원 재판은 어느 심급 단계에서 다시 진행되는지, 기존 법원 판결에 따라 이뤄진 집행의 효력은 어떻게 되는지 등이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문제가 당연히 예상되는데도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하지 않은 채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식으로 입법을 강행한 현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했던 법원도 난감한 상황이다. 대법원은 일단 ‘재판소원 후속조치 연구반’을 꾸렸지만, 연구 결과는 올해 말에야 나올 전망이다.
법왜곡죄도 마찬가지다. 법왜곡 혐의 고소ㆍ고발 사건 상당수가 판결이나 수사 결과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제도 남용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법왜곡죄는 판ㆍ검사나 경찰 등이 수사ㆍ재판 과정에서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하거나 △증거를 인멸ㆍ은닉ㆍ위조하거나 △폭행ㆍ협박 등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하거나 증거 없이 범죄사실을 인정하면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하는 범죄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개정 형법 시행 이후 지난달 25일까지 전국 시ㆍ도 경찰청에 접수된 법왜곡죄 혐의 사건은 총 44건으로, 고소ㆍ고발된 피의자만 118명에 달한다.
게다가 피의자 중에는 일선 판ㆍ검사와 경찰은 물론 대법원장부터 검찰총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등 사법ㆍ수사기관 수장까지 고소ㆍ고발 대상에 올라 파장이 확산됐다.
이 때문에 일선 현장에서는 법왜곡죄가 법원과 수사기관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법원 내 ‘형사부 기피’ 현상이 가뜩이나 심한 상황에서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고소ㆍ고발 부담 때문에 소신 있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도 많다.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이 고소ㆍ고발로 비화돼 재판 독립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법원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대법원은 ‘형사재판 보호ㆍ지원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변호인 선임 지원이나 부당소송 지원 내규 개정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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