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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마을 /사진:민향심 기자 |
[대한경제=민향심 기자] 고령군 우곡면 도진마을은 봄꽃으로 먼저 알려지지만, 이 마을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힘은 사람에게 있다. 삼색능수도화와 홍도화가 화사하게 피어난 길 끝에는 오랜 역사와 생활의 전통, 그리고 서로를 믿고 지켜온 주민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다. 도진마을이 지방소멸 시대에도 다시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도진은 복숭아 도(桃)와 나루 진(津)을 쓰는 이름이다. 말 그대로 복사꽃 피는 나루터라는 뜻이다. 고려 말 박경이 터를 잡은 뒤 1350년대부터 이어져 온 고령박씨 집성촌답게 마을 곳곳에는 시간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다. 한때 복사꽃이 만발해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했다는 마을의 내력은 지금도 도진리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말로 전해진다.
마을 초입 무릉원에 들어서면 정갈하게 손질된 정자와 주민들이 손수 만든 서각 작품이 먼저 반긴다. 그 풍경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마을을 아끼는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보여준다. 죽연정과 낙락당, 도진구곡가로 이어지는 자랑거리도 도진마을의 품격을 더한다. 꽃이 계절의 얼굴이라면 이런 공간들은 도진마을의 속살에 가깝다.
도진마을의 힘은 생활 속 공동체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주민들은 꽃길과 마을 환경을 가꾸는 데 그치지 않고 서각과 목공, 공동작업장 활동을 이어가며 마을의 손맛과 손기술을 지켜왔다. 주민들이 직접 기른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담그는 일도 그중 하나다. 장독대에는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맛있게 익어가는 장이 줄지어 서 있고, 그 풍경은 도진마을이 여전히 살아 있는 생활문화의 공간임을 말해준다.
이 공동체의 중심에는 박돈헌 이장이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박 이장은 새벽 4시면 하루를 시작해 마을 구석구석을 돌보고 꽃길과 주변 환경을 살핀다. 주민들 사이에서 그는 호랑이처럼 무섭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통한다. 마을 일에는 엄격하고 빈틈이 없지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놓치지 않는 리더라는 뜻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장님은 앞으로 100년은 더 사셔야 한다. 오늘의 도진이 이렇게 되기까지 모든 것은 이장님 공덕이다”라며 “이미 공덕비를 세웠지만 그것만으로는 고마움을 다 담기에도 모자라다”라고 말했다. 박 이장의 추진력만으로 지금의 도진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를 믿고 손을 맞잡은 주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도진마을은 기록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을이기도 하다. 먼저 떠난 이들의 삶, 선조들의 충효 정신, 의병과 독립운동의 흔적, 오래된 생활 사진과 유물은 후손에게 마을의 뿌리를 전하는 자산으로 남아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그 안에 쌓인 시간은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도진마을은 꽃이 아름다운 마을을 넘어 역사를 품고 미래를 준비하는 마을로 읽힌다.
지방소멸의 파고가 거센 시대에 도진마을은 한철 반짝이는 명소가 아니다. 사람을 남기고, 전통을 잇고, 돌봄을 실천하며, 공동체의 힘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마을이다. 고령군도 이런 주민들의 노력이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행정의 적극적인 뒷받침과 지원을 더하고 있다.
도진마을은 전국이 주목해도 모자라지 않을 공동체 마을의 본보기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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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 박돈헌(좌측 두번째}이장님과 한수찬(우측 첫번째)면장 과 주민들이 서각작품이 전시된 무릉원 앞에서 도진리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민향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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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 마을을 세가지 색깔로 수놓은 삼색능수도화/사진:민향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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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 충효관 1층에 전시된 주민들의 추억과 역사가 담긴 공간 /사진:민향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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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 충효관 2층에 전시된 소중한 역사 자료들 /사진: 민향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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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진리 박돈헌 이장이 도진구곡가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사진: 민향심 기자 |
민향심 기자 grassm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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