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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품질 점검 목적이어도…도면 요구는‘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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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4-16 14:08:57   폰트크기 변경      

도면 3건 이메일 요구하며 법정 서면 미교부
“목적 불문” 절차 위반 제재…선례 확립
기술자료 탈취 아니어도 요구 단계부터 처벌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건물배관용 연결부품 제조업체가 납품받은 부품의 품질을 점검하겠다는 이유로 수급사업자의 설계도면을 이메일로 요청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다. 이번 제재를 계기로 원사업자들이 관행적으로 요구해 온 도면ㆍ기술자료 수수 방식 전반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건물배관용 연결부품 제조업체인 조인트유창써멀시스템에 대해 하도급법 위반을 이유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4000만원을 부과하기로 15일 의결했다. 납품 품질 점검을 명목으로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이메일로 요구하면서, 비밀유지사항ㆍ권리귀속관계ㆍ대가 등 법정 기재사항에 대한 사전협의와 서면 교부를 일절 이행하지 않은 행위가 제재 근거다.

조인트유창써멀시스템은 건물용 온수ㆍ난방용 증기ㆍ가스 등을 운반하는 배관 연결부품(조인트) 생산에 필요한 금형을 외주로 제조받는 원사업자다. 이 회사는 납품받은 금형의 하자 여부를 가리겠다며 수급사업자에게 금형 내부도면 3건을 이메일로 요구했다. 그러나 하도급법이 의무화한 사전협의나 법정 서면은 단 한 건도 교부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금형 내부도면은 △펀치 △실린더 등 금형 내부 부품의 형상과 구조 △제조에 필요한 치수ㆍ재료ㆍ표면거칠기(조도) △조립 시 나사 규격 등이 담긴 문서다. 하이드로포밍(Hydroforming·금형 내부에 고압수를 주입해 부품을 성형하는 방식) 금형의 핵심 제조 정보를 담고 있어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수급사업자는 해당 도면을 별도 공간에 보관하고 접근 인원을 제한하는 등 비밀로 관리해 왔다.

이번 제재에서 주목되는 점은 공정위가 ‘목적의 정당성’을 위반 면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인트유창써멀시스템 측은 금형 하자 확인이라는 업무상 필요에 따른 요구였다고 주장했으나, 공정위는 목적과 무관하게 절차 위반 자체를 제재 대상으로 보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기술자료 탈취(유용)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요구 단계에서의 절차 위반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하도급 거래 실무상 기술자료 요구는 이메일이나 구두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메일 요구 자체가 핵심 위반 근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업계에 상당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중공업 부품 납품 업체 임원은 “품질 검사나 클레임 처리 과정에서 도면을 요청하는 건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는데, 이번 결정을 계기로 사내 프로세스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며 “구매ㆍ법무 부서 간 협업 체계를 새로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재의 파장은 제조업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건설업계에서도 원청사가 시공 과정에서 전문건설업체에 시공상세도ㆍ공법 자료ㆍ자재 사양서 등을 이메일이나 구두로 요청하는 관행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다. 특히 하자 분쟁이나 준공 정산 국면에서 원청이 하수급인에게 도면 제출을 압박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번 결정은 건설 현장의 이 같은 관행에도 직접적인 경고 메시지가 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전문건설업체는 대형 원청의 하도급을 받는 수급사업자인 동시에, 재하도급을 주는 원사업자 위치에도 놓여 있어 양쪽 모두에서 절차 위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전문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하자 원인 규명이나 공정 점검을 이유로 협력업체에 도면을 요청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데, 별도 서면을 갖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이번 공정위 결정대로라면 건설사 전반이 기술자료 요구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 보호를 위해 앞으로도 요구 단계에서의 절차 위반행위를 집중 감시하겠다”라며, “단순 유용 행위 적발을 넘어 사전 예방 중심으로 하도급 기술자료 보호 체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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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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