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 운명처럼 무언가에 이끌리듯 붓을 잡은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즈넉한 삶에 주는 선물인 듯, 그토록 찾아 헤메던 보물이 그에게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붓을 잡아 선을 그으면서 희열을 느꼈다. 삐뚤빼뚤하던 선들이 자유로이 춤을 추고, 화선지 위를 타고 흐르는 물감은 그를 여러 번 일으켜 세웠다. 작업실에 칩거하며 붓과 씨름하며 모진 추위를 이겨냈다.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빛’이 필요한 시대에 K-화단의 간판급 ‘빛의 화가’ 김성호(65)가 이제야 꽃망울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며 그동안 잘 견뎌왔다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렇게 화가로 반세기의 긴 시간을 살아온 그를 또 한 번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성호 화백. 사진=김경갑 |
서울 성수동 팔라스파트너스에서 이달 24일 시작해 다음 달 29일까지 이어지는 김성호 초대전은 화업 50년을 맞아 도심 불빛과 여명에 대한 감성의 실타래를 뽑아내는 특별한 자리다. 경기도 양평 서종 작업실에 파묻혀 죽어라 그림에만 매달려 대차게 꾸린 ‘예술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전시 개막에 앞서 22일 작업실에서 만난 김 화백은 “이번 초대전은 중동전쟁으로 부대끼는 많은 사람들의 고달픈 삶에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위한 시도”라고 했다. 기름값이 치솟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람객들과 함께 시각적 즐거움을 함께 공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호빵처럼 감미롭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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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 화백의 '새벽-남산에서 본 서울' 사진=팔라스파트너스 제공 |
영남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온 김 화백은 2018년께 깊은 산자락과 북한강 인근에 위치한 경기도 양평 서종으로 찾아들었다.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환한 빛으로 치환하기 위해서다. 그는 거기서 불빛에 이글거리는 야경 만큼 몸을 낮춰서 작업을 했다. 땅에 엎드리다시피 하며 붓질을 이어갔다. 그 순간 파라다이스 같은 환희가 넘쳐 흘렀다. 그림은 색채 이전에 빛과 어둠의 조화를 이룬 균형의 미학이란 사실을 명확히 깨달았다.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듯이, 어둠과 빛이 만나서 시각예술이 태어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그림을 빛과 어둠을 합쳐 만든 예술의 절정이라는 점에서 작업 자체를 음양의 조화로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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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 화백의 '새벽-종로' 사진=팔라스파트너스 제공 |
김 화백은 이렇듯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진정한 예술을 보았다. 신의 소리, 생명의 소리다. 아마도 김 화백의 도심 불빛의 생명력도 그런 것 일 게다.
전시장을 꽉 채울 30여 점의 ‘새벽 그림’은 현장 스토리와 회화적 역량을 굵직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응축한 대작들이다. 남선에서 본 서울의 자태, 울릉도 도동항의 새벽 풍경, 네온사인도 꾸벅꾸벅 조는 종로 거리, 한라산의 웅장한 밤빛 자태, 여명을 깨우는 조명 아래 일렁이는 을지로 자동차 행렬, 황금색 조명에 이야기로 가득찬 자갈치시장, 어둠을 가로지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이 보는 이로 하여금 빛과 어둠이 상존하는 아스라한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는 검정 파랑 노랑 회색 등 다양한 색감으로 풍경을 스케치한 다음, 빛줄기와 시간의 빠른 템포를 버무린다. 원경, 중경, 근경의 구도는 물론 하늘 위에서 보는 듯한 시점과 넓은 화면 대부분을 과감히 어둠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어둠과 불빛이 하나가 된 풍경들은 그대로 화폭 속에 이야기로 들어앉는다. 중첩된 굵은 선묘와 감각적이면서 자유분방한 여백의 미도 매력적인 요소다.
미술 평론가와 미술애호가, 갤러리스트들은 “김 화백은 화업 내내 컴컴한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두레박’을 건져올리는 ‘빛의 마술사’ 역할을 자처한 아티스트”라고 한목소리로 격찬했다. 어두운 도심, 팽팽한 긴장감, 넓게 퍼져 있는 불안감 등 현대사회의 단면만을 골라 화면 깊숙이 채워넣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고충환 씨는 “현대인의 삶과 중첩된 물질 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황폐해져가는 자신의 감성을 치유하듯 일종의 자가 처방전을 화면에 담아내려 한 김 화백의 미학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빛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빛(희망)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내려 애쓰는 작가의 열정이 도드라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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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 화백의 '새벽-자갈치 시장' 사진=팔라스파트너스 제공 |
오로지 붓끝을 ‘희망 미학’의 극점으로 몰아붙이는 이 작가는 도대체 화단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을까.
미술평론가 김윤섭 씨(아이프칠드런 이사장) 역시 “너무 뻔한 것들, 설익은 것을 지양하는 김 화백의 그림에서는 숙성된 형식의 고민이 느껴진다”며 “누구나 같이 격조 있게 누릴 수 있는 아우라를 녹여내려 심혈을 기울인 게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라고 했다. 그의 그림이 묘한 감성과 고독감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미술애호가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은 “김 화백의 경우 빛(조명)을 품은 새벽, 평화로움과 고요함, 빛의 역동성과 분주함을 화면에 담아냈다”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벽 빛줄기가 도심의 건물과 해변 등에 마술처럼 번지는 짜릿한 지점을 잡아낸 게 시장에서 먹혀들어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화백 작품들을 소설이나 시처럼 여운이 묻어나는 것처럼 시각적 스토리를 최대한 응축했다는 평가도 눈길을 끈다. 최환승 팔라스파트너스 대표는 “단순한 외적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니 만큼 스피드한 리듬감과 스토리를 확장하는 것이 김 화백 그림의 백미”라고 강조했다.
미술계 인사들이 대체로 그의 작품을 ‘희망의 후광’과 ‘여명의 리듬감’, ‘새벽을 여는 시적 아우라’라고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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