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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원들 ‘징검다리’로 전락한 풀뿌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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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4-30 04:00:10   폰트크기 변경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 확정 지역이 전국 14곳으로 늘어났다. 미니 총선이라 불릴 만큼 규모가 확대된 이유를 살펴보면 역대 재ㆍ보궐 선거와 양상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선무효 등 사법적 사유로 인한 ‘재선거’보다 현직 의원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스스로 직을 내려놓으며 발생한 ‘보궐선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14개 지역구 중 현직 의원의 사퇴 및 공직 임용으로 인한 보궐선거 지역은 10곳에 달한다. 전체의 71.4%가 의원 본인의 선택에 의해 발생한 궐위인 셈이다. 이는 12개 지역에서 선거가 치러졌던 2018년 6월 당시의 사퇴 비율(33.3%, 4곳)과 비교하면 2.1배에 달하며 , 대선 직후 특수 상황이 반영되었던 2022년의 57.1%마저 압도하는 역대 최고 수치다.

이러한 현상은 국회의원직이 민의를 대변하는 종국적 가치가 아닌, 광역행정권이나 차기 대권을 향한 ‘정치적 징검다리’가 됐음을 시사한다. 다선 의원들의 정치적 생존 주기 연장과 유력 인사들의 체급 확장이 유권자와 맺은 ‘4년 임기’의 사회적 계약보다 우선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 100억 원 이상(이번 14개 지역구 모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질 경우)의 선거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의 조세 부담으로 전가된다.

지방선거는 원래 구청장, 시·도의원 등 밑바닥부터 밭을 갈아온 지역 정치인들이 성장하는 무대여야 한다. 그러나 중앙 권력을 쥔 국회의원들이 체급을 이용해 지원할 경우, 지역에서 실력을 쌓아온 정치인들은 공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낙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당 차원에서도 지역 전문가를 키우기보다 인지도가 높은 현직 의원을 차출하는 방식을 선호하면서, 한국 지방자치의 자생력이 약화된다는 우려가 크다.

국회의원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임기 도중에 의원직을 사퇴하면 유권자들과 맺은 4년 임기 약속을 저버리는 동시에 국회의원 보궐선거 실시 원인을 제공한다. 보궐선거에서 당선자가 확정될 때까지 해당 지역구에선 잠시나마 의정 공백이 발생하며, 그에 따른 선거 비용은 국민 혈세를 축내는 요인이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 보궐선거 실시 확정 시한을 넘겨 의원직을 사퇴한 뒤 선거에서 낙선하게 되면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이듬해 4월로 넘어가 지역 대표 공백이 11개월에 달하는 사태로 이어진다.

한국의 ‘사퇴 대란’과 대조적으로 미국의 연방제 모델은 정치적 이동의 자유와 공적 책임 사이의 합리적 균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미국은 텍사스, 플로리다 등 5개 주를 제외한 대다수 주에서 연방 상ㆍ하원 의원이 주지사 선거에 도전할 때 의원직 사퇴를 강제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선 의원이 주지사에 당선되면 새로운 임기 개시 직전에 의원직을 내려놓으며, 반대로 낙선할 경우에는 기존의 의원 임기를 끝까지 완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주지사 선거에 낙선한 의원은 거의 중단 없이 입법 서비스에 임할 수 있고, 불필요한 보궐선거 비용 지출도 최대한 막을 수 있다. 미국 유권자들이 의원의 주지사 도전을 ‘배신’이 아닌 ‘경력의 확장’으로 수용하는 배경에는 이런 비용과 공백이 제도적으로 억제되고 있다는 신뢰가 한몫한다. 한국 선거에도 유사한 장치가 도입되면 ‘현직 사퇴 리스크’를 줄여 의원의 지자체장 출마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기왕에 출마를 강행한 경우라면 의정 공백을 최대한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장단점을 저울질할 만하다.

지방자치의 성패는 중앙 정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하청 구조를 얼마나 실효적으로 해체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방선거 시즌이 되면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지역구 공동화(空洞化)’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치인에 대한 감성적 호소 이상으로 기제적(機制的) 장치가 요구된다. 정당은 공천 과정에서 ‘당선 가능성’이라는 단기적 공학에 매몰되기보다 지역 사회에 뿌리내린 전문가를 발탁하는 공적 책임을 회복해야 한다. 지방선거가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역민의 삶과 밀착된 ‘정책의 경연장’으로 복원될 때, 한국 민주주의는 비로소 질적 성숙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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