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의무 강화와 사익편취 규제권 안으로
쿠팡 지배구조 검증 압박 고조
[대한경제=문수아 기자] 2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동일인(총수)을 법인 ‘쿠팡’에서 자연인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으로 변경하면서 2021년 쿠팡이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이후 줄곧 유지되어 온 ‘법인 동일인’ 체제가 5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이번 결정은 특히 김 의장 본인과 친족의 국내 계열사 지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내려진 것이어서, 재계와 법조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 ‘동생의 경영 개입’이 핵심 판단 요소
공정위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특정한 핵심 근거는 김 의장의 동생인 김유석 부사장의 ‘실질적 경영 참여’였다. 현행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8조 4항에 따르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4가지 예외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중 가장 까다로운 조항이 바로 ‘친족의 국내 계열회사 경영 참여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쿠팡은 김 부사장이 미국 모회사 소속이며 국내 계열사의 등기임원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경영 참여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공정위의 판단은 달랐다. 공정위는 등기 여부라는 형식보다 실제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기준으로 삼았다.
조사 결과 김 부사장은 쿠팡 내 최상위 등급인 VP(Vice President)급으로,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에 준하는 직위와 예우를 받고 있었다. 특히 물류·배송 정책 관련 회의를 수백 회 이상 주최하고,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등 주요 자회사의 업무 실적을 직접 점검하며 정책 변경을 논의한 정황이 확인됐다. 사실상 주요 사업의 구체적 집행 방향을 결정해 왔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 ‘껍데기 공시’ 끝났다…현미경 검증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됨에 따라 쿠팡이 짊어져야 할 공시 의무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동안 법인 체제에서는 가려졌던 김 의장 개인과 친족의 영향력 범위가 낱낱이 공개돼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주목받는 지점은 쿠팡이 100% 지분을 보유한 국내외 종속기업들이다. 현재 쿠팡의 16개 종속기업 중 매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회사가 3곳에 달하며, 해외에는 26개의 특수관계자가 얽혀 있다. 김 의장이 동일인이 됨으로써, 이들 기업과 김 의장 일가 사이에 어떤 자금 흐름이나 경영상 영향력이 작용하는지가 공시 자료를 통해 투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공정위는 김 부사장의 영향력이 CLS를 넘어 다른 자회사와 해외 특수관계자까지 미치는지도 향후 면밀히 검증할 방침이다.
자본 흐름에 대한 감시망도 한결 촘촘해진다. 그동안 법인 동일인 체제에서는 적용 주체가 모호했던 ‘특수관계인 부당이익 제공 금지(공정거래법 제47조)’ 규정이 이제 김 의장을 정점으로 작동하게 된다.
쿠팡은 지난해 모회사인 쿠팡Inc에 1조4659억원 규모의 첫 중간배당을 지급했으며, 해외 특수관계자와 연간 1조732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거액의 배당과 해외 거래 결정 과정에 김 의장 개인이 어떻게 관여했는지, 그 과정에서 부당한 이익 편취는 없었는지를 공정위가 들여다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쿠팡 측은 국내 지분이 0%라 사익편취 조항 적용이 무리라는 입장이지만, 공정위는 권한과 책임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엄격한 운용을 예고한 상태다.
▲ K-푸드·뷰티의 약진… 대기업집단 개편
한편,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는 102개, 소속회사 3538개가 지정됐다. 지난해보다 집단은 10개, 소속회사는 237개 늘었다. 신규 지정 집단은 11개로 △라인 △한국교직원공제회 △웅진 △쉴더스 △대명화학 △토스 △한국콜마 △희성 △오리온 △QCP그룹(옛 큐로홀딩스) △일진글로벌이다. 영원은 자산총액이 5조원 미만으로 떨어져 지정에서 빠졌다.
주력 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른 지각변동도 확인됐다. 한국콜마와 오리온은 각각 K-뷰티와 K-푸드의 글로벌 수출 호조에 힘입어 자산 총액이 늘어나며 대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됐다. 또한 반도체와 방산 호황에 힘입은 한화가 롯데를 제치고 상위 5개 집단에 진입하는 등 산업 생태계의 변화가 기업 서열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문수아 기자 moon@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