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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유석 삼우씨엠 전무 |
그 중심에는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전문 주체의 부재가 있다. 그런데 그 전문가를 제도 안에 세우려는 시도는 왜 이토록 느린가.
수천억 원 규모의 사업을 비전문가인 조합이 이끌다 보니 시공사와 정비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불리한 계약을 그대로 수용하는 일이 반복된다. 조합원들이 수십 년을 기다리며 사업에 운명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공사와 정비업체 등은 사업 초기부터 개입해 설계ㆍ인허가ㆍ분양까지 사실상 전 과정을 좌우한다.
이런 구조에서 조합원의 이익보다 시공사의 수익이 우선시될 우려는 크다. 공사비 증액과 설계 변경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의를 제기하려 해도 그 논리를 만들어줄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정비사업의 평균 사업 기간은 13년을 넘는다. 사업이 길어질수록 금융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조합원에게 전가된다. 분쟁은 반복되고, 사업은 표류하며, 피해는 쌓인다.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이 건설사업관리(CM)다. 발주자인 조합을 대신해 기획ㆍ설계ㆍ시공ㆍ준공에 이르는 전 단계를 독립적으로 관리하는 전문 주체다. 사업 초기 타당성 검토와 사업비 예측에서 시작해, 시공사 선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 설계 변경 및 공사비 증액 검토, 공정 관리, 준공 후 하자 점검까지 아우른다.
핵심은 조합과 시공사 사이에 독립적 제3자로 서는 것이다. 시공사가 일방적으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할 때 이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조합에 대응 논리를 제공한다. 해외에서 그 효과는 이미 확인됐다. 영국은 공공 정비사업에 CM을 의무화해 사업 기간을 평균 30% 단축했고, 미국은 ‘CM at Risk’ 방식으로 공사비 초과를 구조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다만 국내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CM에 관한 명시적 조항이 없다. CM의 정의도, 업무범위도, 자격 기준도 법령에 규정되어 있지 않으니 현장에 투입되더라도 법적 지위 없이 시공사와 마주해야 한다. CM사 등록 요건이 없으면 누가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표준계약서가 없으면 조합마다 제각각의 계약을 맺게 된다.
기획ㆍ타당성 검토부터 준공ㆍ입주까지 전 단계에 걸친 업무범위의 표준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에 대한 CM 도입 의무화, CM사 자격 및 등록 기준 확립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뒷받침하는 국토교통부 고시와 지자체 조례도 함께 정비되어야 한다. 제도의 틀이 없는 곳에서 전문성은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정비사업 선진화의 열쇠를 규제 완화에서 찾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관리 체계의 공백이 더 큰 과제다.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말은 오래됐다. 그 전문가가 설 자리를 만드는 일은 아직 시작도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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