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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독일 등 주요국은 국방비를 대폭 증액 중이다. EU 차원에서도 자체 기술로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확보하고, 핵무기 탑재 핵 추진 잠수함을 증강해 유사시 미국 도움 없이 독자 운용할 수 있는 ‘핵우산’을 구축하려 한다. 2030년까지 투입 예산만 8000억 유로(약 1258조 원)에 달한다.
이 거대한 전환기에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는 국가는 역설적으로 EU를 떠난 영국이다. 영국은 러-우 전쟁 지원을 단순히 민주주의 수호가 아닌, 자국 방산업의 구조적 도약 기회로 삼고 있다. 그 전략은 무기·자금 지원을 넘어 전쟁 교훈을 자국 방산기술 발전의 재도약 기회로 흡수하고 이를 유럽 무기의 표준으로 확산시키는 치밀한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첫 단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실전 데이터’ 수집이다. 드론, 전자전, 분산형 작전 등 최신 전쟁 양상이 실시간 검증되는 러-우 전장에서 수집된 다양한 데이터를 자국 방산 기술력 제고에 즉각 반영하고, 이를 통해 최신 전쟁에 최적화된 무기체계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고도화된 기술은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내 ‘영국식 표준’의 이식으로 이어진다. 영국은 전쟁 발발 초기부터 말만 외치며 실제 지원에 인색했던 여타 유럽국들과 달리, 거의 모든 실질적인 지원을 주도했고, 여러 차례 대규모 방산기업 사절단을 보내 합작ㆍ공동생산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우크라이나와 ‘100년 파트너십’을 체결해 무기 공동생산과 기술 협력을 제도화했고, 이를 20억 파운드(약 4.2조 원) 규모의 공적 수출금융(UKEF)과 결합해 자금줄까지 영국에 의존하게 하는 구조로 묶어 두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방산 생태계를 영국식 규격과 조달 체계에 고착시키는 효과를 낸다.
우크라이나에서 공고해진 영국식 표준은 다시 NATO 공급망 내 확고한 위치 점유로 이어진다. 영국은 우크라이나의 NATO 표준화 과정에 깊이 개입하며, 향후 동유럽과 NATO 전체 방산 시장에서 규격과 조달 구조를 주도하려 한다. 실전에서 검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된 영국식 표준은 NATO 내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영국이 방산 공급망의 상위 포식자로 올라서는 발판이 될 것이다.
결국 이 흐름의 목표는 유럽에서 급증하는 방산 수요를 흡수하는 것이다. 러시아를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유럽국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실전적이고 NATO 체계와 완벽히 호환되는 영국의 무기체계 공급망에 기댈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안보 독립 추구가 ‘영국 중심의 새로운 의존 구조’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이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는 K-방산에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안보 불안은 K-방산에게도 분명 기회지만, 단순히 수출량 증가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급증하는 유럽의 방산 수요가 영국이 설계한 공급망에 흡수될 경우, 우리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질 것이다. 영국 사례가 보여주듯 진정한 경쟁력은 판매량 증가가 아니라, ‘구조 장악 능력’에서 나온다. 표준을 선점하며, 금융을 묶고, 현지 생산과 데이터를 통합해야 새로운 규칙을 주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자체적으로 기술·생산·금융·표준을 결합한 장기 전략 구사가 어렵다면, 최소한 영국이 구축하는 새로운 산업 질서 속에서 지분을 확보하거나 협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미국과 마찬가지로 침체에 빠져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영국 조선 산업을 K-방산의 유럽 전진기지로 활용한다면 그것은 강력한 지분이 될 것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일시적 수요 증가에 기댄 채 단순 ‘판매 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설계되는 시장 질서를 주도하는 ‘설계 국가’ 혹은 그 설계 국가의 ‘핵심 파트너’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영국이 유럽에서 그리는 큰 그림은 미래 K-방산의 기회이자 위기로 다가서고 있다.
김정호 전 Univ. of St Andrews 방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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