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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거혐(巨嫌)'의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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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5-10 19:40:34   폰트크기 변경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0일 오후 부산 북구에서 열린 박민식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국내 정치권에선 '적대적 공생'이란 말이 유행했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개딸'과 '윤 어게인'으로 불리는 강성 팬덤 지지층을 기반으로 당내 강경파가 득세할 때 나돌았던 개념이다. '심리적 내전상태'라는 지적까지 나왔던 극단적인 대결 구도에선 대표선수도 강경파가 각광받기 마련이다. 실제로 2025년 8월 여야 당권 레이스 국면에서, 민주당에선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다. 여야 개념이 아니다"면서 대야 강경론을 폈던 정청래 후보가, 국민의힘에선 "이재명 정권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 바치겠다"면서 '반탄'으로 분류되던 장동혁 후보가 각각 승리해 당권을 거머쥐었다.

원래 '적대적 공생' 개념은 국제정치에서 나왔다. 냉전시대 미ㆍ소(美ㆍ蘇 )간 대결구도에서 서로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된 긴장관계 덕분에 서로가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관계를 빗댄 개념이다. 소련의 강경파가 "미제의 침략에 맞서 공산당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면서 자국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미국의 강경파가 "소련의 침략에 대비해 국방비를 늘리자"면서 군비를 확장하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식이었다.


한국정치에서도 낯설지 않은 구도다. 북한의 공산정권은 핵ㆍ미사일 고도화로 남북 대결구도를 고착화하며 3대 세습체제를 이어왔고,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국내 민주화 운동을 억압했던 것과 겹쳐 보인다. 민주화 이후 이런 구도가 국민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흐름 속에 윤석열 정권이 '여소야대' 타개를 목적으로 다시 소환을 시도했던 장면이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군을 국내정치에 끌어들일 수 있는 계엄 발동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남북 긴장관계를 조성하는 시나리오는 역대 군사정권의 단골 메뉴였다.

적대적 공생이 내포하는 유서 깊은 역학관계를 감안하면 국내 강성 팬덤 정치는 여러모로 아류작 수준이라고 평할 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 공생관계는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재명 정권 출범(2025년 6월) 이후 정치와 경제에서 비교적 안정이 회복되고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더블 스코어'로 제치면서 공생 관계는 깨졌다. 여야 강 대 강 대결이 민주당 완승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정 대표가 제1야당을 굳이 의식할 필요 없이 진영이 원하는 법안을 일방 처리할 수 있고, 장 대표가 더이상 '윤 어게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이 그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다만, 6·3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최근 여야 움직임에서 적대적 공생과는 조금 결이 다른 새로운 공생 관계가 부각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장 대표가 강원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진태 강원도지사로부터 "결자해지가 필요하다"는 쓴소리를 들을 때만 해도 선거전 전면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시장 선거에서조차 국민의힘 후보가 민주당 후보와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 내 박빙대결을 벌이는 현상은 '윤 어게인' 세력과 절연 못하는 장 대표에 대한 국민 거부감 때문이라는 당 안팎의 불만이 팽배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관련된 8개 형사사건에 대해 '공소 취소' 길을 열어주는 '조작기소 특검법안'이 지난달 30일 민주당 주도로 발의되면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국민의힘이 "헌정 질서 파괴"라며 강력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당초 법안을 지방선거 전이라도 강행처리에 나설 태세였다. 야당이 국민 지지를 충분히 받으며 대여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허약한 야당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다행히 국민 여론에 심상치 않은 역풍 조짐이 일자  민주당은 '법안 속도조절'을 택했다. 입법권과 행정권을 장악한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사법질서 훼손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이 중도층  분노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 바람에 쪼그라들던 장 대표의 위상에 다시 바람이 들어가게 됐다. 10일 박민식 부산 북갑 보선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파이팅‘을 외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두 사안이 공통적으로 국민적 혐오와 지탄의 대상이면서도 상대의 그런 특성 덕분에 서로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거혐(巨嫌)의 공생 관계'라고 칭할 만하다. 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이 대통령 기소 취소가 국민 지지를 받았다면서 여당은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 것이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승리하면 장 대표 체제에 대한 재신임이 이뤄진 것이라며 중도퇴진 요구 시 이를 거부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것이다. 거혐의 양 축 사이에서 아직 표의 향방을 못 정한 중도 유권층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그럼에도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도 가려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게 심판자의 시대적 책무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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