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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머리 숙여 사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 |
심화영 산업부 IT팀장
1990년대 삼성 반도체 공장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새 장비가 반입되면 엔지니어들이 밤새 장비를 뜯어봤다. 일본·미국 엔지니어가 떠난 뒤 매뉴얼을 번역해가며 공정을 익혔다. 자동화되지 않아 웨이퍼를 직접 손으로 옮기며 라인을 돌리던 힘든 시절이었다. 그 시절 삼성맨들은 “회사에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삼성은 그렇게 세계 1위가 됐다.
지금 반도체 협력사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예전 삼성맨은 장비를 뜯어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장비업체에 전화하는 콜센터가 됐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나, 이번 총파업 위기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 의외로 정확한 문장일 수 있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본질은 단순한 임금 싸움이 아니다. “누가 회사를 성장시켰고, 그 과실을 누가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충돌이다.
조직의 불신은 불황기에 싹튼다. 최악의 반도체 불황을 겪은 2023년, DS 부문은 15조원 적자를 냈다. 직원들의 성과급(OPI)이 0%가 될 때, 정작 HBM 실책의 주역인 경영진은 수백억원의 퇴직금을 챙겨 나갔다.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보상 체계를 방치한 경영진의 오만이 결국 초강성 노조를 키워낸 것일지도 모른다.
정부의 포퓰리즘도 찬물을 끼얹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던진 ‘AI 국민배당’ 구상은 투자자들에게 “이 나라에서 혁신은 곧 징벌”이라는 메시지를 줬다. 투자자들은 한국 사회 전체가 AI 산업의 과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코스피 8000이라는 역사적 고지를 눈앞에 둔 2026년 5월, 한국 경제의 심장 삼성전자는 스스로 멈춰 설 위기에 놓였다. 17시간 밤샘 협상이 남긴 것은 노사간 불신과 21일 총파업 선언이다. 외국인 수조원대 매도는 단순한 파업 공포가 아니다. 기술적 야성을 잃고 ‘분배의 늪’에 빠진 삼성, 그리고 이를 키운 경영진과 정부를 향한 시장의 경고다.
만약 삼성전자가 일론 머스크의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머스크는 병목이 생기면 공장 바닥에서 잠을 자며 엔지니어들과 설계 도면을 직접 수정한다. 기술적 비전이 명확하기에 그 고통은 ‘혁신’의 과정이 된다. 반면 지금 삼성 내부에선 기술적 위기의식보다 “옆 동네(하이닉스)보다 덜 받으면 안 된다”는 보상 비교 심리가 더 강하게 읽힌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머스크식 경영에도 부작용은 있다. 장시간 노동과 노조 갈등 논란이 반복됐고, 미국 노동당국의 제재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테슬라가 무노조 원칙 아래서도 인재를 끌어모으는 힘은 분명하다. 주식 기반의 확실한 보상, 그리고 ‘세상을 바꾼다’는 명확한 지향점이다.
삼성은 지금 ‘시간’이 없는 회사다. 총파업이 현실화하면 단순 생산 차질 이상의 후유증이 남게 된다. 반도체 산업은 한 번 신뢰가 흔들리면 고객사가 공급망 자체를 바꿔버린다. AI 시대 반도체 기업에 필요한 건 단순 현금 보상이 아니라 ‘공동 운명체 구조’다. 직원도 회사 성장의 과실을 가져가되, 업황 리스크와 투자 부담 역시 일정 부분 공유하는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같은 글로벌 수준의 보상 체계가 절실하다. / doroth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