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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누정, AI 시대 ‘디지털 디톡스’ 여행지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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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5-21 09:04:22   폰트크기 변경      
스마트폰 알림 대신 계곡 물소리… “느린 쉼” 찾아 봉화로

봉화 청암정의 그윽한 옛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 사진 : 봉화군청  제공

[대한경제=류효환 기자]  초거대 AI와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손안의 화면은 24시간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밀어내고, 현대인은 어느새 쉬는 순간조차 알고리즘의 추천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첨단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갈망하고 있다.

정답과 속도의 경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경북 봉화의 전통 누정 문화가 새로운 치유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 봉화의 누정은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다.

그 안에는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잡념을 비워내려 했던 선조들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다. AI와 디지털 피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일종의 ‘아날로그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석천정사에서, 명상하는 청년의 모습 / 사진 : 봉화군청  제공

◆ 도깨비도 물리친 선비들의 몰입... 석천정사에 담긴 ‘디지털 디톡스’

석천정사가 자리한 석천계곡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학문에 몰두할 때마다 밤이면 도깨비가 나타나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공부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정신을 흔드는 도깨비의 장난은 오늘날 스마트폰 알림과 SNS의 유혹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 후기 학자 권두응은 이를 물리치기 위해 계곡 입구 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신선이 머무는 세상’이라는 의미의 이 글귀에는 세속의 번잡함을 끊고 오롯이 사색과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실제로 석천계곡은 깊은 숲과 물소리, 절벽 풍광이 어우러져 자연 속 몰입감을 제공한다.

빠른 자극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가장 느린 방식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거북바위에 새겨진, 청하동천(靑霞洞天)이라는 글씨 / 사진 : 봉화군청 제공

◆ “거북 등에 불 놓을 수 없다” ... 청암정이 보여준 공존의 철학

봉화 청암정에는 효율보다 생명과 공존의 가치를 우선했던 선조들의 철학이 남아 있다.

1526년 청암정을 지을 당시, 원래는 일반 정자처럼 온돌방이 설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거북 형상의 바위 위에 불을 놓는 것은 거북 등을 태우는 것과 같다”는 조언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결국 선조들은 과감히 구들을 철거하고 차가운 마루 구조를 택했다.

사람의 편리함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선택한 것이다.

AI와 데이터 중심 사회에서는 효율과 결과가 우선시되지만, 청암정은 인간이 놓쳐서는 안 될 공감과 배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연못 위에 비친 정자의 모습과 느린 물결은 방문객들에게 자연스러운 안정감과 여유를 선사한다.


춘양면에 위치한 한수정 / 사진 : 봉화군청  제공

◆ 과열된 일상을 식히는 공간 ... ‘찬물 같은 정신’ 품은 한수정

춘양면에 위치한 한수정은 이름부터 특별하다.

‘찬물처럼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한수정은 정보 과부하 시대에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식혀주는 공간으로 꼽힌다.


춘양면 한수정에 있는 400년 느티나무 / 사진 : 봉화군청  제공


400년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 돌다리를 건너고, 와룡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경험은 디지털 속에서 파편화된 감각을 회복시키는 과정과도 같다.

특히 T자형 구조로 설계된 정자는 자연스럽게 바람길을 만들어내는데, 인공 냉방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호흡과 속도를 체감하게 한다.

◆ “삶의 편의 넘어 의미 찾는 여행”

봉화군은 최근 자연과 정신적 치유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슬로우 관광’ 콘텐츠에 힘을 쏟고 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사색과 쉼, 전통문화 체험을 결합한 체류형 관광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봉화군 관계자는 “AI가 삶의 편의를 높여준다면, 봉화의 누정은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공간”이라며 “이번 주말만큼은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연결되는 시대일수록, 잠시 멈추는 공간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봉화의 오래된 누정은 오늘도 조용히 사람들에게 ‘느린 쉼’을 건네고 있다.

류효환 기자 ryuhh8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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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효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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