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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파트 9만호 공급] ① “서민은 빌라에 살아라?”…공급 대책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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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5-26 06:00:50   폰트크기 변경      

전세사기 트라우마에 빌라 기피 고착
서민, 빌라 전월세로 내몰리는 구조
LH 매입 신호에 재개발 투자 수요 자극
“정책이 오히려 양극화 심화시킬 수도”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수요 억제 일변도로 부동산 정책을 펴온 이재명 정부가 ‘비아파트 9만호 공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가 종료된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ㆍ전세ㆍ월세가 동시에 치솟는 ‘트리플 급등’ 상황에서 나온 공급 대책인데, 시장에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발표한 비아파트 매입임대 대책을 두고 시장에선 “결국 서민은 빌라에서 살라는 얘기 아니냐”는 냉소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주재한 지난 22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2026~2027년 2년간 수도권에서 매입임대주택 9만호를 공급하고, 이 중 6만6000호는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규제지역에 집중 배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축 오피스텔ㆍ빌라를 직접 매입해 시세 이하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모듈러 공법으로 공사기간을 줄이고 토지비의 최대 80%를 지원해 사업자의 조기 착공을 유도하겠다는 구상도 담겼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무엇보다 “비아파트가 아파트 수요를 흡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자산가치를 고려하면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이 빌라로 눈을 돌리겠냐는 것이다. 여기에 비아파트 실수요자였던 청년ㆍ서민층은 2022∼2023년 전세사기 사태로 인한 빌라 기피 심리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탓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이번 공급 대책은 전세사기 여파로 냉각된 비아파트 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수요가 받쳐 줄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서울과 수도권 재개발 예정구역 빌라나 다세대ㆍ다가구의 투자 심리만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전세사기에 수요층 이미 이탈…투자자만 웃는 '이상한 대책'



정부가 지난 22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발표한 비아파트 9만호 공급 대책의 표면적 목표는 서민 주거 안정이다. 그러나 정작 이 대책의 실제 수혜자가 누구인지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전세사기 트라우마에 빌라를 등진 서민은 더 비싼 아파트 전ㆍ월세 시장으로 밀려나고, 재개발을 기대하고 서울 노후 빌라(연립·다세대)를 쓸어 담은 투자자들은 ‘공공이 사준다’는 신호를 등에 업고 웃음 짓는 구조다. 주거 안정을 위한 공급 확대가 되레 주거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비아파트 시장은 이미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떠난 시장이란 점이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수요층의 이탈이 먼저였다. KDI(한국개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전세사기 이후 다세대ㆍ연립주택 공급은 67.4% 급감했는데, 이는 공급자가 줄었다기보다 수요자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원의 진단이다. 실제로 작년 서울 비아파트 준공 물량은 4858가구에 그쳤다. 아파트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한때 연간 3만가구 이상 준공됐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민간 공급이 멈춘 것과 다름없다. 인허가(-11.4%)ㆍ착공(-7.7%)ㆍ준공(-28.0%)이 전 단계에서 동반 감소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리 빠른 공급을 약속해도 실제 입주 물량이 시장에 반영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급이 늘어도 수요가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비아파트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 준공 후 20년 이상 경과한 노후 주택이다. 관악ㆍ종로구 등 일부 자치구는 노후 비중이 70%를 웃돈다. 화재ㆍ지진 등 재난에 취약하고 주거 환경이 열악한 탓에 청년ㆍ신혼부부 등 실수요층은 이미 빌라를 기피 주거 유형으로 낙인 찍은 지 오래다. 정부가 신축 매입임대를 늘리더라도 기존 노후 빌라가 대다수인 비아파트 시장의 이미지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작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건 서민이다.

정부 대책이 무주택 청년ㆍ서민층을 빌라 임대 시장으로 밀어낸 가운데, 현금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재개발 수익을 겨냥해 이미 빌라 시장에 뛰어든 지 오래다. 실제로 아파트 대출 규제가 본격화된 지난해 6월 이후 빌라 거래량이 오히려 월 4000건으로 3년 2개월 만에 최다를 기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실거주자가 아닌 재개발 기대 투자자들이 시장을 채웠다는 얘기다.

공공 매입임대 확대 발표는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LH가 신축 비아파트를 대량 매입한다는 신호 자체가 투자자들에게 ‘손실 방어선’으로 작동하면서 재개발 기대 투자 수요의 진입 유인을 높이는 역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예로 서울시 모아타운 등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추진 기대감에 용산ㆍ마포 등 도심 노후 빌라 가격이 한 달 새 2억7000만원 오르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정부가 대출 규제와 세제 강화로 일반 실수요자의 손발을 묶어 놓은 사이,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가들은 이미 재개발 기대 지역 노후 빌라 쇼핑을 마쳤다”며 “서울 내 주요 지역 빌라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 지를 정부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시장 현실을 전혀 모르는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이번 대책은 ‘누가 빌라에 사느냐’는 질문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비아파트는 아파트와 달리 단기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세사기 트라우마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량만 늘려서는 공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비아파트 시장을 실질적으로 살리려면 수도권 기준 85㎡ 이하 국민주택 규모를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 수요 측 규제 완화가 함께 수반돼야 한다”며 “이번 대책이 자칫 투자자 배를 불리는 엉뚱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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