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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 칼럼] 李정부의 서민용 ‘빌라 양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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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5-27 06:00:28   폰트크기 변경      


“그 동네 빌라요? 매물은 옛날에 다 팔리고 없어요.”

서울시 용산구 재개발 기대 구역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가 비아파트 9만호 공급 대책을 내놓으며 빌라 시장을 주거 안정의 해법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그 시장의 속사정은 달랐다. 서민과 청년층이 전세사기 트라우마에 빌라를 떠난 자리를 현금 부자들이 조용히 채우고 있었다. 그것도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 흐름은 202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흔들던 2020년 전후, 부동산 시장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움직임이 있었다.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매수 문턱이 높아지자 일부 자금력 있는 투자자들이 경매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목표는 아파트가 아니었다. 서울 곳곳의 노후 빌라, 그중에서도 재개발 구역에 묶인 다세대ㆍ연립주택이었다.‘지금 당장은 낡고 좁아도 10년 안에 아파트로 탈바꿈할 것’이란 전략이었다.

경매는 이 투자자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통로였다. 일반 매매와 달리 경매 낙찰 물건은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적용됐고, 경락잔금대출을 통해 낙찰가의 70~8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기피 심리가 퍼지면서 경매 시장에 매물이 쌓이고 낙찰가율이 떨어진 것도 이들에게는 기회였다. 감정가의 60~70% 수준에 낙찰받아 재개발을 기다리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이 시기 서울 노후 빌라 경매에 뛰어든 투자자 중 상당수가 한 지역에 두세 건씩 낙찰받아 조합원 입주권을 확보하는 전략을 썼다.

그로부터 5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들의 기다림이 서서히 결실을 맺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작년 10ㆍ15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이후 이 흐름은 더 뚜렷해졌다. 아파트 매수에 실거주 의무가 붙으면서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빌라가 현금 투자자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우회로가 됐다. 올해 들어 서울 다세대ㆍ연립주택 거래량이 전년 대비 60% 가까이 급증한 배경에는 이처럼 이미 자리를 잡은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과 새로 진입하는 투자 수요가 뒤섞인 결과가 자리한다.

문제는 정부가 이 구조를 읽지 못하고 비아파트 9만호 매입임대 카드를 꺼냈다는 데 있다. 2020년 전후 경매로 재개발 구역 빌라를 쌓아온 투자자들 상당수는 이미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다. 서울 아파트를 틀어쥔 채 빌라까지 갖춘 이들이 정부 매입임대 정책의 공급자가 되고, 정작 아파트 한 채도 없는 서민과 청년은 그 빌라의 임차인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또, 아파트 전ㆍ월세 수요자에게 빌라 임대 물량 공급은 별 의미가 없다.

결국 정부가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든 울타리가, 서민과 청년을 빌라 세입자로 가두는 장벽이 돼버린 셈이다. 아파트에 살고 싶지만 대출이 안 나와 어쩔 수 없이 낡은 빌라 전ㆍ월세를 전전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노후 빌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다리다. 그 사다리를 걷어차고 낡은 빌라 임대 물량만 늘리는 건 주거 안정 대책이 아니라 가두리 양식장을 키우는 일이다. 이 양식장 안에서 투자자들은 정부 보호를 받으며 또다시 안정적 수익을 거둬들일 것이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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