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가전 인사이드] AI 세탁기 시대, 섬유유연제는 왜 ‘수십 년 전 사이폰 방식’에 갇혔나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6-06-18 05:20:20   폰트크기 변경      

LG 트롬 오브제컬렉션 워시콤보 /사진:LG전자


세탁 초기에 섬유유연제 흘러 들어가는 ‘구조적 특성’ 소비자 불만 지속
LG전자 공식 안내 확인 결과…완전히 개선 안 돼 “MAX선 이하 투입 필수”


[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인공지능(AI)이 세탁물의 무게와 오염도를 스스로 분석하고, 스마트폰으로 전 과정을 원격 제어하는 시대다. 하지만 정작 드럼세탁기의 섬유유연제 투입 방식은 수십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빨래가 많아 섬유유연제를 가득 채웠더니 세탁 시작과 동시에 모두 들어가 버렸다”는 구조적 불편함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16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드럼세탁기 일부 사용자들 사이에서 세탁 초기에 섬유유연제가 본세탁 과정에 함께 투입되는 이른바 ‘조기투입’ 현상에 대한 문의와 오인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원래 섬유유연제는 세탁이 끝난 뒤 마지막 헹굼 단계에서 자동 투입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세탁 초기에 유연제가 흘러 들어가면 세제와 섞여 본연의 향기와 유연 효과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알아서 흘러내리는’ 사이폰 방식의 한계


이 현상은 제품 자체의 불량이라기보다 드럼세탁기 업계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는 ‘사이폰(Siphon) 방식’의 구조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압과 액체의 위치 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자동으로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원리다.


LG전자 역시 공식 서비스 안내를 통해 이러한 조기투입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환경 조건을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섬유유연제를 세제함 내 최대 기준선(MAX) 이상으로 넣거나, △가정 내 수압이 지나치게 강한 환경, △세제함을 강하게 닫아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 △급수 중 세제함을 여는 경우 등이 원인으로 제시된다.


소비자들이 가장 의아하게 느끼는 부분은 단연 ‘MAX 표시’의 존재다. 일반적으로 최대 눈금은 해당 용량까지 가득 채워도 정상 작동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사용 환경에서는 용액을 MAX 선에 가깝게 찰랑거릴 정도로 채웠을 때, 문을 닫는 진동이나 급수 시 튀는 물방울 등의 미세한 영향으로도 사이폰 현상이 미리 촉발돼 조기투입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비자 게시판에는 “빨래 양이 많아 유연제를 가득 채웠는데 세탁 시작 직후 모두 사라졌다”, “MAX까지 넣으면 안 된다면 왜 눈금을 그렇게 만들어 놨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반응도 적지 않다.


10년 전 주의사항이 2026년에도 그대로…이유는 ‘비용과 내구성’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문제가 최근 등장한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는 점이다. LG전자가 이미 10여 년 전인 2014년에 공개한 공식 서비스 안내 영상에서도 동일한 주의사항이 소개됐으며, 현재 판매 중인 최신 제품의 사용설명서와 고객지원 자료에도 유사한 내용이 그대로 포함돼 있다. 결국 AI와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2026년 현재까지도 섬유유연제 투입 구조는 과거 방식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업계에선 제조 비용과 내구성이 가장 큰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사용되는 사이폰 방식은 모터나 센서가 필요 없는 단순한 물리적 구조여서 제조 비용이 낮고, 세제 찌꺼기로 인한 고장 가능성이 적다. 반면 이를 완벽히 제어하기 위해 전자식 밸브나 펌프를 활용한 정밀 투입 방식을 도입하려면 제품 부품 수 증가와 원가 상승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제조사가 유사한 원리로 섬유유연제를 공급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구조적 한계는 존재한다”며 “제조사들은 비용과 신뢰성, 그리고 편의성 사이에서 현실적인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가전의 똑똑함을 기대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세탁기가 스스로 오염도를 판단하고 세제량까지 계산하는 시대에, 섬유유연제만큼은 여전히 사용자가 눈금보다 훨씬 적게(약 절반 수준) 조절해야 하고, 수압과 문 닫는 습관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선 향후 프리미엄 제품 라인업을 중심으로 센서 기반의 정밀 자동 투입 기술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당분간은 소비자들이 섬유유연제를 최대 눈금보다 항상 여유 있게 적게 채우고, 세제함을 부드럽게 여닫는 등 일상적인 사용 수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예방책으로 꼽힌다.

심화영 기자 dorothy@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프로필 이미지
산업부
심화영 기자
dorothy@dnews.co.kr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