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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판사형 정치인'과 민심 난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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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6-19 13:50:17   폰트크기 변경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운데), 정점식 원내대표(왼쪽), 신동욱 최고위원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작금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당권파를 중심으로 당내 상당수 의원들로부터 대표직 사퇴 압박을 받고 있지만 꿋꿋이 버티고 있다. 사퇴론자 관점에서 보면 보수 제1야당 리더로서 장 대표의 부적합 사유는 시쳇말로 차고도 넘친다. ‘정신 승리’, 확증 편향, 철면피, ‘찌질이’ 등 원색적 비난이 잇따르는 현실이 그걸 말해준다. 지방선거 이전에는 ‘윤 어게인’ 세력과 완전 결별을 못하는 그의 노선 때문에 출마 후보들이 바닥권을 맴도는 당 지지도를 안고 선거전에 임해야 했다. 선거 이후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대응에서 ‘전면 재선거’를 주장하고 부정선거론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언행으로 주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 한다고 비난 받는 이유다.

그러나 장 대표 리더십을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한다면 너무 일방적이고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장 대표는 선거 기간 동안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면서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지원유세로 대표 소임에 충실하려 했다. 선거 직후에는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봉쇄하고 있는 시위대를 사실상 나홀로 찾아가 그들 목소리를 청취하고 동료 의원들 앞에서 공론화에 힘썼다. 자리보전을 위해 사태를 키운다는 지적도 많았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행보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지난 16일에는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강행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공언대로  경찰 및 대한체육회 관계자들과 함께 공들였던 대한펜싱협회 사무실 진입 시도를 여성 한 명의 반대로 7시간 만에 포기했다. 인도 뉴델리 아시아선수권 대회 출전하는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시위대에 가로막혀 평소 쓰던 개인 장비를 끄집어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던 시민들로선 장 대표가 모처럼 정치력을 발휘해 돌파구를 열어주길 바랐지만 결과는 빗나갔다. 장 대표는 더 진전된 조치 없이 본인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 기대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줬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 여의도 문법으로 깎아내리고 폄훼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오히려 소신과 신념이 강한 ‘판사형 정치인’이란 관점에서 접근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주지하듯이 그의 정치권 이력은 짧다. ‘1.5선 당대표’란 꼬리표도 있지만, 지난 21대 총선 때 대전 유성구갑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2020년을 기준으로 해도 6년에 불과하다. 그보다 2004년 대전지법 예비판사를 시작으로 도중에 국회 파견 기간 3년을 제하고 2020년 광주지법 부장판사에서 물러나 변호사 개업할 때까지 13년 정도 몸담았던 판사직이 그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란 의미다.

판사가 판결문을 작성하는 과정은 주위 여론과 시선,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이런 공간에서 십수년간 길들여진 행동 양식은 정계로 넘어와서 ‘원칙과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본인이 옳다고 믿으면 주위 반론과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고 끗꿋이 밀고 나가는 게 정치인의 덕목이라고 믿는 정신세계의 소유자로 진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계 투신 이전에 다져진 직업의식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이는 늘 범죄 혐의자를 상대하며 선악의 이분법적 인간관계에 길들여진 ‘검사형 정치인’과 대비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야당 대표를 대화 상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대시한 끝에 비상계엄이란 자충수로 자멸한 것도 전직의 한계를 넘지 못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물론 판사형 리더십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두차례 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로 출마했던 이회장 전  한나라당 총재를 위시해 인천 출신 5선 국회의원을 지낸 황우여 국민의힘 상임고문, 국회 부의장을 지낸 5선 국민의힘 중진 주호영 의원, 윤 전 대통령 지원으로 당대표를 지냈다가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는 4선 김기현 의원 등은 모두 온건 성향이며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평판을 들었던 정치인이다. 그들이 활약할 때는 중도 여론층의 지지를 지금처럼 많이 잃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그에 비해 장 대표는 강온 노선 중에서 강경을 택하면서 판사형의 부정적인 요소가 더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본인 소신과 신념이 한쪽으로 너무 강하다 보니 국민 지지를 기반으로 생존하는 대중정당 대표가 민심의 큰 흐름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결함으로 이어졌다. 장 대표 스타일은 한자리 의석을 가진 군소 정당에선 환영받을 수 있는 리더십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회 과반의석을 목표로 전국정당을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정권 창출을 위해 뛰어야 하는 제1야당 대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무엇보다 정당 지지율이 그걸 대변한다. 지선 이전에 20% 초반에 갇혀 있던 지지율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 이후 당 지지도가 올라갔지만 그건 보수 언론에서도 지적했듯이 장 대표 체제가 끝나고 새로운 지도체제가 등장해 보수 재건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의 표출이라고 봐야 한다. 그걸 본인의 리더십에 대한 지지로 이해한다면 민심난독증이 중증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부적격 사유만 늘어날 뿐이다. 한순간 콩깍지가 씌어 지난해 당대표 경선에서 장 대표를 찍었던 당내 주류 의원들 중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탓하는 인사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은 진퇴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직 50대인 장 대표가 “정치를 짧게 해도 괜찮다”는 심산이라면 기득권을 사수하며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버티는 것도 선택 가능한 길이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고 큰꿈에도 도전해 보고자 한다면 정치적 자산이 조금이라고 남아 있을 때 용퇴하는 모습으로 ‘국민 밉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상책일 것이다. 보수 재건을 위해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당분간 여론의 시선 밖에 머물면서 난독증부터 치유하는 게 재기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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