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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호남에 공장이 아니라 산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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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6-30 09:21:25   폰트크기 변경      

공장은 하루아침에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은 그렇지 않다.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 국민보고회에서 산업통상부 등 4개 관계 부처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핵심으로 한 대규모 투자 선언이다. 투자 지역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두고 미국·일본·유럽이 국가 차원의 전략을 앞다퉈 내놓는 시점에, 한국도 무언가 필요했다. 그러나 숫자의 크기와 목적의 선명함은 별개다.


우선 이 투자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목표는 여럿인데 우선순위가 보이지 않는다. 단계별 목적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투자 규모는 숫자에 불과하다. 호남 반도체 투자에는 세 가지 목적이 혼재해 있다. AI 시대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의 생산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산업 전략, 수십 년간 고착된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기 위한 균형발전 전략, 그리고 오랫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됐던 지역에 대한 정치적 배려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동시에, 같은 강도로 추구할 수 없다. 산업 전략이라면 글로벌 경쟁력이 입지 선택의 절대 기준이어야 하고, 균형발전이라면 호남만이 아니라 전국적 산업 재배치의 밑그림이 먼저 나와야 한다. 지역 배려라면 그에 걸맞은 국민적 합의와 투명한 선정 기준이 필요하다. 세 가지가 뒤섞인 채 약 1000조 원이 투입되면, 어느 목적도 제대로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목표를 한 가지로 좁힌 사례가 있다. 일본의 TSMC 구마모토 공장이다. 인구 4만3000명의 농촌 소도시, 풍부한 지하수와 안정적 전력, 저렴한 부지. 입지 조건만 보면 호남과 닮았다. 일본 정부는 제1·2공장에 약 1조2000억 엔을 지원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구마모토에는 소니의 이미지센서 공장이 이미 인접해 있었다. 소니·덴소·도요타 등 수요 기업이 공동 출자해 '만들면 바로 쓸 곳'이 확보된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다. 현(縣)은 공항철도를 재편하고, 소재·부품·장비 현지 조달 비율을 2030년까지 60%로 끌어올리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설계의 밑바탕에 미·중 기술 패권 속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라는 단 하나의 국가 전략이 깔려 있었다. 지역 분산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였다. 기쿠요초(菊陽町)의 인구가 매년 500명 이상 늘고 지가 상승률이 전국 1위를 기록한 것도 산업적 합리성이 먼저 작동한 결과다. 물론 구마모토도 장밋빛만은 아니다. 수요 기업이 있었음에도 1공장 가동률은 40%대에 머물고 있다. 자동차·산업용 반도체 경기 둔화가 원인이다. 수요 기반을 먼저 확보한 곳조차 이런 리스크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호남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호남은 반도체 수요 기업도, 관련 산업 집적도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생태계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는 더욱 분명해야 한다. 첫째, 밸류체인의 완결성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공정(前工程)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부는 후공정을 충청권에 배치한다고 했지만, 전공정과 후공정이 떨어져 있으면 물류 비용과 납기 리스크가 따른다. 소·부·장 기업의 현지 조달 체계 역시 공장 착공과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둘째, 글로벌 시장으로의 연결이다. 메모리는 내수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승부하는 제품이다. 완성된 칩이 호남에서 글로벌 고객에게 도달하는 항만·공항·철도 연계가 확보되지 않으면, 생산 비용이 입지의 불리함을 이기지 못한다. 셋째, 사람이 머무는 도시다. 반도체 엔지니어가 가족과 함께 정착할 교육·의료·주거 인프라가 없으면 지역 경제 파급은 공장 담장 안에서 멈춘다.


호남 반도체 투자가 진정한 국가 전략이 되려면, 이 투자가 산업 경쟁력·균형발전·지역 배려 중 어느 것을 핵심으로 삼는지를 먼저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나머지 목표는 핵심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것이어야 한다. 산업은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장을 세우는 것과 산업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김현아 가천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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