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전부터 ‘담합 관행’
비축량 충분했는데 전쟁 나자
공급가격 인상… “올해 2조 벌 듯”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미국ㆍ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상황을 틈타 담합을 통해 국내 유가를 올린 혐의로 국내 정유사 4곳과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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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 인하 조치에 따라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ℓ당 1900원까지 내려가고 있는 가운데 5일 서울시내의 한 주유소를 찾은 시민들이 차량에 주유를 하고 있다. 안윤수 기자 ays77@ |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ㆍSK에너지ㆍGS칼텍스ㆍ에쓰오일(S-OIL) 등 정유사 4곳을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앞서 구속된 HD현대오일뱅크의 가격결정부서 부서장 A씨를 비롯해 같은 회사의 책임매니저와 법무실장,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 등 관련 임직원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미국ㆍ이란 전쟁 발발 직후 석유제품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회사의 직접적인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원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두 회사의 가격을 그대로 따라 올리면서 시장 전체의 경쟁 제한 효과만 26조원에 달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특히 검찰은 이들의 담합이 전쟁 이후 우발적인 게 아니라, 이전부터 지속적인 가격 정보 공유와 협조 체계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봤다.
수사 결과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관계자들은 전쟁 이전부터 가격 정보를 교환하며 가격 정책을 조율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정유 4사의 시장 점유율이 98.6%에 달하는 완전 과점 구조인 만큼 이들의 담합이 국내 유가 급등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당시 정유사들이 상당한 양의 원유를 비축하고 있어 가격을 급격히 올릴 필요가 없었는데도 공급가격을 대폭 인상했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메신저 대화방에서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 벌 듯” 등의 대화를 주고받은 정황도 확인됐다.
아울러 검찰은 가격 담합과 함께 정유업계의 ‘전량구매계약’ 관행도 문제 삼았다. 정유 4사는 2021년부터 자영주유소와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한 뒤 일방적으로 공급가격을 통보하고, 다른 업체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한 혐의도 받는다. 이를 위반한 주유소에는 손해배상 청구와 각종 불이익을 부과해 거래 선택권을 제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 일부 임직원에게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 정보를 미리 입수한 뒤 관련 자료와 메신저 기록을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과 조사방해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일부 정유사가 산업통상자원부에 공급가격 인상폭을 실제보다 낮게 허위 보고한 정황도 확인하고 관계기관과 후속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이용해 유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시장 경쟁을 왜곡한 중대한 범죄”라며 “담합과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유가를 교란한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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