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정석한 기자] 한국 건설산업에서 도급인의 안전관리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최상위권인 반면, 법적권한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관리가 도급인 한 주체에 대한 압박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발주제도ㆍ적정공사비ㆍ공사기간 개선 등과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충재)은 8일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 도급인 안전관리 의무ㆍ책임ㆍ권한의 균형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총 5개국(한국, 호주, 영국, 미국, 일본)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비교ㆍ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건산연은 먼저 산업안전보건법이 근로자의 생명ㆍ신체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법인 만큼, 건설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도급인에게 의무ㆍ책임이 권한보다 다소 무겁게 설계되는 것 자체는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도급인의 안전관리 의무ㆍ책임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짚었다.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면서 원청사인 도급인이 하도급사인 하청 근로자의 안전까지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에서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와 책임(처벌 최대 7년 이하 징역)은 대폭 강화되었으며, 2021년에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돼 시행 중이다.
올해에도 사망사고를 다수ㆍ반복 발생시킨 기업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건설업 등록말소까지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도급인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ㆍ책임 강화 기조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건산연은 안전관리의 의무ㆍ책임ㆍ권한 등 부문에 대해 한국과 안전관리 선진국 4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비교ㆍ분석했다. <도표 참조>
먼저 의무 부문에서는 호주ㆍ영국의 경우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만큼만 의무를 진다’는 원칙(합리적 실행가능성, 영향ㆍ통제능력)을 법 조문 자체에 담아 의무의 범위를 통제 범위에 맞추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한국은 이런 장치가 명확하지 않아, 통제범위에 대한 고려가 주로 사고가 난 뒤 형량을 정하는 단계에서 법원의 양형재량에 맡겨지는 편이다.
책임 부문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한국 도급인의 처벌수준(사망사고 시 7년 이하 징역)은 비교 5개국 중 호주(15년 이하)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형만 두고 징역형이 없는 일본과 비교하면 형사적 부담의 격차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권한 부문에서는 호주ㆍ영국의 도급인은 안전관리계획을 통해 건설현장에 맞는 안전규칙을 스스로 설계하고, 이를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적용할 수 있다. 일본도 혼재작업 상황에서는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시정을 지시할 법적근거를 두고 있다.
반면 한국 도급인의 법적 권한은 하청 업체(법인)를 거치는 간접적 시정요구 중심이며, 안전지시 자체는 허용되나 작업 방법ㆍ순서 등 직접적 작업지시로 넘어가면 파견법상 불법파견 소지가 생겨 그 경계가 불명확하다. 즉 건설현장에 대한 사실상 영향력을 법적 통제수단으로 온전히 전환하기 어려운 셈이다.
건산연은 안전관리가 도급인 한 주체에 대한 압박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발주제도ㆍ적정공사비ㆍ공사기간ㆍ안전문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해 결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도급인의 법적권한 보완, 의무ㆍ책임을 실제 통제 범위 안으로 맞추는 장치를 함께 마련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수영 건산연 연구위원은 “도급인의 안전관리 의무ㆍ책임ㆍ권한에 대한 균형을 살피는 작업은 형식적 문서관리에 머물던 현장 안전관리를 실질적 재해예방으로 전환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검토할 과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정석한 기자 job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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