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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정당의 트라우마와 정치적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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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7-15 18:48:20   폰트크기 변경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당에도 트라우마가 있다. 과거의 뼈아픈 상처는 정치적 교훈이 되고 미래의 선택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트라우마가 강박으로 굳어져 정당의 정무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노선을 고집하게 만들 때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보완수사권 박탈’과 국민의힘의 ‘부정선거론’이 그런 트라우마 위에 서 있다.

민주당 기억의 저변에는 정치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남긴 상흔은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집단적 트라우마가 됐다. 검찰을 겨냥한 ‘검수완박’이 당의 숙명적 과제가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정치 검찰의 행태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작업과 민생을 보호하는 형사사법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 간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 데 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 당론에 변호사단체와 여성단체가 반대성명을 내고 당내에서도 반대 법안이 발의되는 상황인데도 민주당 강경파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찰의 부실 수사가 잇따라 드러나고 피해자 보호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도 요지부동이다.

앞서 6ㆍ3 지방선거 전에는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 길을 열어주는 특검법안을 발의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경파가 발의를 강행함으로써 여당의 완승을 좌절시킨 최대 악재가 됐다는 지적이다. 뒤늦게 입법에 속도조절을 하고 있지만 정치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언제든지 악재를 되살릴 가능성이 열려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5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 전남광주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선관위 해체 및 재선거를 요구하는 광주시민청년학생모임'' 집회에 참석해 부정선거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트라우마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보수 정권 몰락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 강성 지지층은 그 원인을 자신들이 선택한 대통령의 자책골에서 찾기보다 배신과 음모, 불공정한 제도 탓으로 돌렸다. 이런 보상심리에서 ‘윤어게인’ 세력이 탄생했고 선거 후에는 '부정선거론'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양새다.

장동혁 대표는 여기에 편승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당권을 지탱하고 있다. 제1야당의 트라우마는 엄밀히 말해 ‘장동혁 트라우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비상계엄 해제에는 찬성했지만 대통령 탄핵에는 끝까지 반대했다. 자신이 지지했던 대통령의 탄핵과 정권 상실에 따른 트라우마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는 정치적 강박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의 몰락을 정상적인 정치적 귀결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배신’을 찾고, 지방선거 패배를 정상적인 민심의 결과로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선거 시스템’을 의심하는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중도층이 등을 돌리고 당의 외연이 쪼그라드는 것이 훤히 보이는데도 같은 길을 고수하고 있다.

두 당의 트라우마 뿌리는 다르지만 구조는 놀랍도록 닮았다. 민주당은 검찰을 믿지 못하고 국민의힘은 선거 시스템을 믿지 못한다. 모두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된 불신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는 데 있다. 주위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킨다는 면에서 ‘확신범’에 가깝다. 여야 어느 한 쪽만 이런 증상이 있다면 어떻게든 정치 무대에서 '강제 퇴장' 당했겠지만 양쪽 다 같은 증상을 갖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상쇄되고 있다. 의도치 않은 공생관계다. 그것도 보편이익이 아닌 그들만의 특수이익을  지키는 정치 생태계이다.

일반적으로 선거 패배 뒤에는 민심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노선을 수정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념과 신념에 사로잡힌 무리들은 실패를 자신의 오류를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밀어붙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패배는 반성의 계기가 아니라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가 정치적 강박으로 굳어진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결국 국민이 정당 변화를 위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사람을 바꾸는 것뿐이다. 검수완박을 시대적 소명처럼 떠받드는 정치인, 부정선거론을 놓지 못하는 정치인이 당의 노선을 주도하고 당론을 장악하고 있는 한, 당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당 지도부라면 당권에서 물러나 2선으로 후퇴해야 하고, 의원이라면 배지를 반납하고 평지로 내려오도록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당 스스로 이들을 걸러내지 못하면 유권자가 그들을 기억하고 심판의 칼을 들어야 한다. 공천에서 배제되지 않으면 본선에서 배격하는 수밖에 없다. 정당의 인적 쇄신은 시대와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정치인을 정치 무대에서 끌어내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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