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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①“선배 세대가 누린 건축계 수혜…청년에게 돌려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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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8-27 06:00:30   폰트크기 변경      
박도권 ARiC 초대 원장이 말하는 청년 건축과 연대의 미래

박도권 ARiC 초대 원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안윤수 기자 ays77@

[대한경제=홍샛별 기자] 1980년 1월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에 신입사원으로 첫발을 디딘 청년은 4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국 건축의 부흥과 격변을 온몸으로 겪어냈다. 7년간 대표이사직을 역임하고 고문까지 마친 뒤 2022년 말 정든 회사를 떠났던 박도권 전 삼우건축 대표가 건축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대형 프로젝트 수주전의 지휘관이 아니라, 청년 건축 인재 양성 플랫폼 ‘ARiC(Archi Rise Camp·아릭)’의 초대 원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고서다.

◇정림ㆍ희림ㆍ간삼 3사 뭉쳤다…“시대적 수혜 돌려줄 책무”
지난달 28일 천안 대한상공회의소 충남인력개발원(천안기술교육센터)에서 입학식을 열고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 ARiC은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등 국내 정상급 대형 건축사사무소 3사가 뭉쳐 만든 전례 없는 교육 플랫폼이다. 고용노동부가 청년들의 사회적 재도약을 돕기 위해 추진한 ‘K-뉴딜 아카데미’ 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현대건설,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참여한 50여개 사업단 중 건축 설계 분야로는 유일무이하다.

이 프로그램의 시초는 6∼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개 대형 설계사 대표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대형사를 이끌면서 느끼는 사회적 책무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해왔다. 민간 설계 대가 기준을 바로 세워 제값을 받는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무리한 덤핑을 지양하며 설계 품질로 승부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자정 노력도 이어왔다. 이번 ARiC 역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자’는 논의의 연장선이었다. 김기한 정림건축 대표가 이 프로그램의 수장 자리를 제안했을 때, 박 원장이 수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 원장의 결심 밑바탕에는 선배 세대로서 지닌 깊은 부채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1980년에 입사해 43년을 한 회사에서 일했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을 지나오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던 건 시대를 잘 타고난 덕분에 누린 일종의 수혜”라며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의 청년들은 태어나보니 신규 일자리도, 대형 프로젝트를 경험할 기회도 크게 줄었다. 우리 세대가 누렸던 경험과 자산을 젊은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선배 세대의 마땅한 사회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화려한 스펙 대신 잠재력을…“포트폴리오보다 태도가 본질”
실무 역량을 갖춘 건축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출범한 ARiC 1기 모집에는 전국에서 120여명의 청년이 몰렸고, 치열한 심사 끝에 40명이 선발됐다. 지원자의 80% 이상은 대학 졸업 후 2∼3년간 취업 준비를 이어오며 긴 공백기를 겪었거나 휴학 중인 상태였다.

선발 기준 역시 남달랐다. 화려한 스펙 위주의 지원자는 지양했다. 대신 취업 문턱에서 나이가 다소 많거나, 지방에 거주해 양질의 실무 교육 기회에서 소외됐던 청년들에게 우선적으로 문을 열어줬다. 박 원장은 “취지는 명확하다. 청년들의 사회적 재진입 기회를 열어주자는 거다”며 “이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도 취업이 가능할 스펙 보유자보다는, 정량적 스펙은 부족해도 열정과 잠재력이 있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줘 자신감을 되찾아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지원서를 직접 꼼꼼히 검토한 박 원장은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싶다’, ‘설계 툴을 완벽히 다루고 싶다’는 지원자들의 목표를 보고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이런 기술은 건축이라는 ‘커다란 숲’에서 한낱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삼우건축은 이미 10년 전부터 신입 채용 때 포트폴리오를 보지 않았다. 포트폴리오를 누가 만들었는지 검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툴 다루는 법은 입사 후 배워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면서 “스펙쌓기에 몰두한 나머지 본질을 잃고 있다. 건축을 대하는 태도와 진정성이야말로 청년들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역설했다.

그래서 ARiC 교육과정은 철저히 실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공백기를 겪은 청년들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 초반 열흘간 라이노(Rhino) 등 필수 툴 활용법을 다진 뒤, 3개사가 3주씩 돌아가며 각 사의 특화 프로젝트를 직접 전수한다.

박 원장은 기존 대학이나 사설 학원 교육과의 결정적 차이로 ‘살아있는 실무 감각’을 꼽는다. 그는 “학교 스튜디오에서는 주로 가상의 프로젝트를 다루며 화려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집중하는데, 현업에서는 공사비와 법규, 발주처의 요구를 조율하는 현실 감각이 훨씬 중요하다”며 “대형 설계사무소가 현장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문제를 어떻게 돌파하는지 직접 체득하는 것이 이번 교육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박도권 ARiC 초대 원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안윤수 기자

◇“일단 부딪혀라…잠재력의 뇌관 터뜨려주는 게 목표”
박 원장은 청년 시절 쏟아부었던 건축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40년 넘게 건축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양분이었다고 소회한다. 그는 1979년 12월 대학교 2학년 시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친구 다섯 명과 백마역 인근에 보증금 100만원, 월세 2만원짜리 작은 작업실을 얻어 밤새 작업하고, 아침 기차로 신촌에 가 수업을 들은 뒤 다시 돌아와 밤새 토론하고 도면을 그리던 시절이다.

그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남산공원 개발계획안을 출품하기 위해 숱한 밤을 지새웠다. 용달차 비용이 없어 다 같이 패널을 들고 작업실에서 서울역까지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덕수궁까지 직접 걸어가 접수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며 “그때는 건축을 사랑하는 마음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때 온몸으로 불태웠던 건축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이 43년 여정을 버티게 한 단단한 뿌리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청년들이 맞닥뜨린 고민을 나누고 열정을 일깨우기 위해, 매주 수요일 천안교육센터를 찾아 교육생들과 1:1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 원장은 “입사 초기에는 아는 것도 없고 설계도 서툴렀다. 그래서 남들이 하나를 그릴 때, 두 개를 그렸다. 더딘 것 같아도 어느 순간 계단식으로 실력이 도약하는 순간이 온다”며 “40명의 수강생 중에는 학벌 콤플렉스를 겪거나 공백기로 자신감을 잃은 이들이 많지만, 누구에게나 잠재력은 있다. 선배의 역할은 그 잠재력의 뇌관을 건드려 터뜨려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원장의 시선은 이번 1·2기 단기 교육을 넘어 장기적인 생태계 상생을 향하고 있다. 향후 창업·경영 지원 프로그램이나 중소형 설계업체 직원들을 위한 실무 교육으로 확장하는 구상도 그리고 있다. 그는 “국내 설계사무소의 80% 이상이 소형사인데, 세무ㆍ회계부터 계약서 검토 매뉴얼조차 부족한 실정”이라며 “대형사가 축적한 표준계약서와 실무 백서를 정리해 공유한다면 업계 전반의 자생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수강생들이 이번 ARiC 프로그램을 통해 좌충우돌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온몸으로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 원장은 “지금 청년들은 도로 위에 막 진입한 초보운전자와 같다. 급발진도 해보고 급브레이크도 밟아보고 끼어들기도 해봐야 운전을 배울 수 있다”며 “이 곳에서는 아무리 서툴러도 다 받아줄 테니, 실패를 두려워 말고 마음껏 부딪히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조언했다.


홍샛별 기자 byul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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