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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시행 6개월]①‘경영 판단’과 ‘근로조건 영향’ 경계 모호…불확실성만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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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8-31 11:02:41   폰트크기 변경      
삼성전자 호남 프로젝트 논란 등 현장 혼선… 지침에 ‘신규투자 쟁의 불가’ 명시 촉구

사진:연합

미국·영국·일본·독일, 투자·공장 신설 등 경영 결정 자체는 파업 대상으로 보지 않아


한국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까지 노동쟁의 범위에 포함…해석지침에 명확한 기준 필요


구조조정과 신규투자 구분해 근로자 보호는 ‘영향’에 대한 교섭으로 보장해야


[대한경제=심화영 기자] 회사가 새 공장을 짓기로 했을 때 노조가 그 결정 자체를 되돌리기 위해 파업할 수 있을까.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주요국은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회사의 투자, 공장 신설·폐쇄, 사업 재편 등 기업의 경영 방향을 결정하는 행위 자체와 그 결정으로 근로자에게 발생하는 영향을 구분한다.

경영 판단 자체를 노사 간 쟁의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해당 결정으로 발생하는 해고·배치전환·보상·재교육 등 근로자의 고용과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교섭·협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다. 결정은 경영의 영역에, 영향은 협상의 영역에 두는 구조다.

미국 , 법으로 ‘의무적으로 협상할 사항’과 경영 판단을 구분

미국은 전국노동관계법(NLRA)을 통해 사용자가 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의무적 교섭사항(mandatory subjects of bargaining)​을 임금, 근로시간, 기타 근로조건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어떤 사업을 할지, 특정 사업을 계속할지, 공장을 신설하거나 폐쇄할지 등 기업의 기본적인 경영 판단은 원칙적으로 의무적 교섭사항과 구분된다. 노조가 관련 사안을 논의 대상으로 제기할 수는 있지만, 사용자가 반드시 교섭에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 연방대법원도 1981년 First National Maintenance Corp. v. NLRB 사건에서 이 같은 원칙을 제시했다. 회사가 수익성이 떨어지는 고객과의 계약을 종료하면서 해당 사업을 중단한 사건에서, 법원은 사업을 계속할지 여부에 관한 결정이 기업의 경영·사업 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 사용자가 그 결정 자체를 두고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경영 결정이 근로자의 고용·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은 별개의 문제다. 사업 축소나 폐쇄에 따라 해고 등이 발생한다면 그에 따른 근로조건과 고용상의 영향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영국, 보호받는 노동쟁의의 범위를 법률로 규정


영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TULRCA)을 통해 법적 보호를 받는 ‘노동쟁의(trade dispute)’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임금·근로조건, 채용·해고, 업무 배분, 징계 등 고용관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항이 중심이다. 법이 정한 노동쟁의의 범위에서 벗어난 순수한 경영 판단을 관철하기 위한 쟁의행위는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예컨대 ‘사업부를 매각하지 말라’거나 ‘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하라’는 요구 자체가 경영 판단에 관한 것이라면, 이를 관철하기 위한 파업은 보호받는 노동쟁의로 인정되기 어려운 구조다. 대신 경영 판단으로 대규모 감원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보호를 위한 별도의 협의 절차가 작동한다.

영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해고가 예정될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협의 과정에서는 해고를 피하거나 줄이는 방안, 해고 대상 근로자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한다.

즉 폐쇄나 구조조정이라는 결정 자체를 노조가 파업으로 되돌리는 것과, 그 결정으로 발생하는 고용 충격을 줄이기 위해 협의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일본·독일, ‘경영전권’과 ‘공동결정’으로 경계 설정


일본 역시 판례와 노사관행을 통해 생산계획, 설비투자, 사업장 이전 등 기업의 경영·생산 활동에 관한 사항을 사용자의 고유한 경영권에 속하는 영역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공장 폐쇄나 생산계획 변경 등 경영 판단 자체의 철회를 요구하는 쟁의행위는 정당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다만 경영 결정으로 근로자의 고용이나 임금, 근무지 등이 실제로 변경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근로조건의 변경과 관련한 노사 간 협의·교섭이 필요하다.

독일은 노동조합과 별도로 노동평의회(Betriebsrat)​라는 사업장 단위 근로자 대표기구를 두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사업장 폐쇄 등 중대한 변화가 근로자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가져오는 경우에는 노동평의회에 정보를 제공하고 협의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특히 사업장 폐쇄나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근로자의 경제적 불이익을 완화하기 위해 퇴직금이나 재교육 지원 등을 담은 이른바 ‘사회적 계획(Sozialplan)’​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다. 경영 결정 자체를 근로자가 파업으로 막는 것과, 그 결정으로 발생하는 근로자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제도적으로 분리돼 있는 셈이다.

물론 국가별 차이는 있다. 특히 프랑스처럼 경영·구조조정 결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상대적으로 폭넓게 인정되는 경우도 있어 주요국의 제도를 하나의 모델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영국·일본·독일 등에서는 기업의 경영 판단 자체와 그 결과로 발생하는 근로조건 문제를 구분하는 원칙이 비교적 뚜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법률이 ‘경영상 결정’을 노동쟁의 범위에 포함

한국의 개정 노조법은 이와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개정 노조법은 노동쟁의의 정의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포함했다. 이에 따라 사업의 투자·재편 등 경영상 결정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어디까지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해석 문제가 커졌다.

핵심은 모든 경영 판단이 곧바로 노동쟁의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근로자의 고용과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 결정에 한정되는 것인지다.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해석지침은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영상 결정을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처럼 기존의 고용관계를 축소하거나 재조정하는 결정을 중심으로 예시하고 있다. 배치전환 역시 일반적·일상적인 인사이동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으로 구체화했다.

또 해당 결정이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 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라는 전제를 두고 있다. 신규 투자와 관련해서도 노동부는 사업상 결정 자체만으로는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교섭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취지로 해석해 왔다.

문제는 이 같은 취지가 해석지침에 명시적인 원칙으로 정리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의무적 교섭사항과 임의적 교섭사항을 구분하고, 영국은 법률상 보호받는 노동쟁의의 범위를 규정한다. 일본은 경영전권이라는 판례 법리가, 독일은 경영참여·공동결정 제도가 각각 경계를 형성한다.

반면 한국은 법률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을 노동쟁의의 개념 안에 포함하면서, 구체적인 경계 설정을 상당 부분 해석에 맡겨 놓은 상황이다.

삼성전자 사례로 불거진 ‘신규투자’ 논란

이 같은 법적 경계의 불확실성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회사의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와 관련한 사안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노동부는 신규투자 자체가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결국 쟁점은 ‘회사가 어디에 공장을 짓느냐’ 자체와 ‘그 결정으로 기존 근로자의 고용·배치·임금 등에 어떤 변화가 생기느냐’를 어디까지 하나의 문제로 볼 것인가​다. 신규 공장 건설이나 설비 증설에 따른 통상적인 인력 배치까지 경영 결정에 대한 쟁의 대상으로 확대한다면 기업의 투자·사업 판단과 노사관계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반대로 구조조정이나 사업 철수로 기존 근로자의 고용이 위협 받는 상황까지 단순한 경영 판단으로만 본다면 근로자 보호가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경영상 결정의 이름이 아니라 그 결정이 근로자의 지위와 근로조건에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해석지침에 ‘경영 판단과 근로자 영향’ 기준 명확히 해야

주요국의 제도가 보여주는 것은 근로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근로자를 보호하는 대상을 경영 결정 자체가 아니라 그 결정으로 발생하는 고용·근로조건상의 영향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가 공장을 지을지, 사업을 확대할지, 특정 사업을 접을지는 기업의 경영 판단 영역으로 두되, 그 결정으로 해고·배치전환·근무지 변경·임금 감소 등이 발생한다면 해당 영향에 대해서는 노사가 충분히 협의하고 교섭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한국 역시 이 같은 경계를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률을 다시 개정하거나 대법원 판례가 축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우선 고용노동부의 해석지침에 ‘신규투자 등 순수한 경영 판단 자체는 노동쟁의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구조조정·사업 철수처럼 근로자의 고용과 근로조건에 중대한 변동을 수반하는 결정과, 신규투자·증설에 따른 통상적인 인력 배치처럼 경영활동에 수반되는 일반적 인사조치를 구분할 수 있는 세부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경영계에서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투자와 사업 재편 같은 경영 판단 자체를 노동쟁의 대상으로 폭넓게 인정할 경우 기업의 정상적인 의사결정까지 노사 갈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경영 결정으로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부분은 충분히 교섭하되, 결정 자체와 그에 따른 영향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화영 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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