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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철 한국재난정보학회 명예회장/전국NGO단체연대 상임대표 |
2026년 8월 26일 아침, 재난영화보다 더한 상상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서 거대한 빙하와 암반의 붕괴라는 참사로 현실화되었다. 해발 약 5200m 고지대에서 떨어진 거대한 얼음과 암석은 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추락하며 규모 5.2 지진에 맞먹는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했다.
위성 분석에 따르면 빙하 하단부 약 0.2㎢가 붕괴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너져 내린 얼음과 암석은 토사와 바위를 집어삼키며 계곡을 따라 내려왔고, 하천을 일시적으로 막아 거대한 자연댐을 형성했다. 곧이어 이 자연댐이 터지며 발생한 급류와 거대한 토석류는 불과 30분 만에 트리슐리강 수위를 약 9m나 끌어올렸고, 하류의 마을과 도로, 교량, 수력발전시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8월 31일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900명 안팎이며 실종자는 4700명을 넘어섰다. 피해자는 현지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 순례자, 외국인,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 관계자까지 포함되었다. 산악도로와 교량이 끊기고 전력과 통신이 두절된 가운데, 파괴된 수력발전시설과 작업터널 내부에 갇힌 작업자들을 구하기 위한 수색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토석류가 하천을 다시 막아 형성된 자연댐이 또 다른 홍수파를 유발할 수 있는 2차 재난 위험이다. 이번 참사는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빙하 붕괴, 하천 폐색, 자연댐 형성 및 붕괴, 토석류 급류, 사회기반시설 파괴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전형적인 ‘빙권 복합ㆍ연쇄재난(Cascading Disaster)’이다.
필자는 과거 네팔·티베트 국경의 지룽검문소와 산악마을, 북극 스발바르, 알래스카, 남미 안데스의 우아스카란 빙하 현장을 직접 걸었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사회기반시설의 안전을 다루며 재난정보와 시민단체(NGO) 활동을 이어온 토목공학자로서 무너진 삶의 터전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다. 동시에 우리 사회 전체에 엄중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과연 기후가 안정적이라는 ‘과거의 통계’만을 믿고 ‘미래의 사회기반시설과 방재체계’준비에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장에서 목격한 빙하의 후퇴는 결코 단순한 자연경관의 변화가 아니었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오르면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얼음이 지탱하던 산악 사면과 암반의 안정성이 급격히 무너진다. 고산지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암반 균열부의 결합력이 상실되고, 융빙수는 지반의 간극수압을 급격히 높여 사면 붕괴를 촉발한다. 빙하가 사라지는 과정은 물의 흐름과 사면 안정을 송두리째 바꾸는 지반·수문 조건의 변화이자, 결국 토목공학이 다루어야 할 기본 설계조건의 근본적 혁신을 요구하는 명백한 신호다.
그동안의 토목·방재 설계는 과거 수십 년, 혹은 100년의 관측 기록이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라는 정상성(Stationarity) 전제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에 과거 통계만으로 50년, 100년을 버텨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혔다. 산악 교량은 단순 계획홍수위 계산을 넘어 거대한 유목과 암석의 교각 충돌, 토석류에 의한 기초 세굴과 매몰, 하천 폐색에 따른 순간적 수위 폭등까지 감안해야 한다. 수력발전소 역시 본체 강도뿐 아니라 진입도로, 송전망, 작업터널, 비상대피로를 포괄하는 ‘재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확보해야 한다. 무너지지 않는 구조물을 넘어 기능수행, 즉시복구, 인명보호의 다층적 설계체계가 절실하다.
그러나 이번 비극을 특정 국가의 불운이나 공학 기술자만의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녹인 온실가스는 국경 없이 대기 중에 쌓여왔다. 재난의 피해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지만, 원인에 대한 책임은 화석연료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지구촌 시민 모두에게 있다. 공학계의 저탄소 건설재료 도입과 구조물 수명 연장 못지않게, 정부의 과감한 탄소 감축 정책, 기업의 친환경 전환, NGO와 시민사회의 실천적 연대가 맞물려야 한다.
재난 관리의 틀 역시 전환되어야 한다. 물과 빙하, 온실가스에는 국경이 없다. 티베트 고산지대의 위험이 네팔을 거쳐 하류 수계 전체로 이어지듯, 초국경 재난에는 국경을 넘는 정보 공유가 필수적이다. 위성영상, LiDAR, InSAR, 드론, IoT 센서와 인공지능(AI) 영상분석을 융합해 상시 감시망을 갖추고, 정보를 즉각 공유하는 ‘초국경 조기경보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
대한민국 역시 결코 예외가 아니다. 거대 빙하는 없지만 극한 강우, 산사태, 도심 침수, 하천 범람이 맞물리는 복합재난 위험이 급증하고 있다. 개별 시설물 관리에서 벗어나 유역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정밀안전점검과 진단 역시 과거 손상 탐색을 넘어 미래 기후변화 위험 노출도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자연의 변화는 오랜 시간 축적되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파괴적인 재난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재난안전의 핵심은 사후 복구를 넘어 보이지 않는 변화를 조기에 발견하고 선제적으로 행동하는 데 있다.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를 넘어 시설물 안전이자 인간 생명의 문제다. 자연은 이미 경고하고 있다. 이제 공학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답해야 할 시간이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큰 슬픔을 겪고 계신 유가족과 현지 주민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또한 실종자들의 조속한 무사 귀환과 함께 구조 작업이 안전하게 마무리되어, 피해 지역이 하루빨리 안정과 일상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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