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경쟁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가 확산하면서 자동차의 성능과 기능, 경쟁력은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합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동차 한 대에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100개 이상의 전자제어장치(ECU)가 탑재되고 차량 내부 시스템은 물론 클라우드와 모바일 서비스, 충전 인프라 등 외부 시스템과도 연결된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는 글로벌 완성차업체(OEM)의 전략에서도 확인되는데 경쟁의 중심이 엔진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체 차량 운영체제인 MB.OS를 통해 주요 기능을 하나의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로 통합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소프트웨어 전문 조직 CARIAD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고 있으며 도요타 역시 플랫폼 Arene을 통해 차량 소프트웨어 개발과 검증을 표준화하고 여러 차종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동차를 한 번 만들어 판매하는 완제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플랫폼을 확보하면 새로운 기능을 여러 차종에 빠르게 적용하고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서비스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화가 진전될수록 새로운 과제도 커진다. 바로 사이버보안이다.
차량의 주요 기능이 소프트웨어로 통합되고 외부 시스템과 연결될수록 하나의 취약점이 차량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진다. 특정 ECU나 통신 구간에 보안 솔루션을 추가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복잡해진 공격 경로를 관리하기 어렵다.
실제로 자동차를 겨냥한 사이버 공격도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사이버보안 전문기업 업스트림에 따르면 자동차 사이버 공격의 84.5%가 원격 방식으로 실행되며 전체 공격의 약 40%가 백엔드 서버와 클라우드 등 OEM 인프라를 대상으로 발생한다. 차량의 연결성이 확대될수록 공격 표면 역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안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은 글로벌 자동차 사이버보안 시장이 2026년 약 38억9,000만달러에서 2030년 약 79억4,0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규제 강화도 OEM의 대응 방식을 바꾸고 있다. UNECE WP.29 R155·R156과 ISO/SAE 21434 등 글로벌 기준은 자동차 제조사가 사이버보안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과정까지 관리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글로벌 OEM은 개별 차량이나 부품 단위의 보안만으로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어렵다. ECU와 소프트웨어, 협력사 부품과 개발 과정까지 포함해 보안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보안 내재화(Security by Design)가 핵심 개발 원칙으로 부상하고 있다. 개발 단계부터 보안을 고려하고 취약점을 조기에 발견해 수정해야 출시 이후 리콜이나 긴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따른 비용과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IBM 시스템과학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개발·설계 단계에서 취약점을 수정하는 비용을 1배로 봤을 때 QA·테스트 단계에서는 약 10배, 출시 이후 운영·양산 단계에서는 최대 100배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자동차 보안은 개발 이후 추가하는 기능이 아니라 개발 초기부터 관리해야 할 핵심 영역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OEM이 필요로 하는 것도 개별 보안 제품을 추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개발·테스트·검증·인증·운영 등 전 과정의 보안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고 이를 여러 차종과 프로젝트에 확장할 수 있는 보안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러한 보안 플랫폼에 대한 수요는 국내 관련 기업들의 사업 전략에도 반영되고 있다. 그중 피지컬 AI 보안 전문기업 아우토크립트는 자동차 보안 플랫폼을 구축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차량 개발 단계의 취약점 분석부터 테스트·검증, 차량 내부 및 외부 통신 보안, PKI 기반 인증까지 자동차 사이버보안 전반을 지원한다. 특히 CSTP(Cybersecurity Testing Platform)를 통해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사가 차량의 보안 취약점을 체계적으로 테스트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우토크립트 관계자는 “결국 SDV 시대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빠르게 개발하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새로운 기능을 여러 차종으로 확장하고 이를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보안 역량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며 “보안은 더 이상 부가 기능이 아니라 SDV 시대의 플랫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다.”고 말했다.
임종영 기자 l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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