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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연금 적립금 / 자료=금융감독원 제공 |
[대한경제=김관주 기자] 500조원 규모로 성장한 퇴직연금 시장의 저수익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기금형 제도 도입이 추진되는 가운데 운용 주체인 수탁법인에 무과실 입증 책임을 지우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금융투자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보수적인 설계 탓에 수익률 제고에 한계를 드러냈던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의 실패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달 중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전망이다. 앞서 당국은 지난 2월 노사정 퇴직연금 공동선언을 기점으로 노사정 및 전문가로 구성된 실무작업반을 가동해 관련 제도 설계를 진행해 왔다.
가장 큰 쟁점은 퇴직연금을 굴릴 수탁법인에 부여될 무과실 입증 책임이다. 논란의 불씨가 된 것은 최근 알려진 한국고용복지연금연구원의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수탁자 책임 확보 등을 위한 방안 연구’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담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 초안은 수탁법인이 의무 위반으로 가입자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책임을 면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나아가 수탁법인의 이사 역시 연대해 손해를 배상하도록 명시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제도가 당국의 보수적 잣대 탓에 실패한 디폴트옵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봤다. 정부는 디폴트옵션 도입 당시 원금 손실을 우려해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 100% 원리금 보장 상품(안정형)을 적격 상품에서 배제하지 않고 포함시켰다. 그 결과 가입자의 자금이 대거 안정형에 쏠리며 수익률 제고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4일 발간한 ‘초고령사회 다층노후소득을 위한 퇴직연금제도 개편’ 자료를 보면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53조3000억원 규모로 성장했으나 정기예금 등 안정형 비중이 85.4%에 달해 전체 연간 수익률은 3.69%에 머물렀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전문가인 수탁법인에 운용을 맡겨 기존 제도의 저수익 한계를 극복하려는 취지다. 하지만 수탁법인에 무과실 입증 책임을 지울 경우, 배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시 원리금 보장 위주의 소극적 운용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운용 주체가 법인으로 바뀌었을 뿐 원금 보장에 무게를 두는 당국의 보수적 접근이 제도의 실효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과도한 규제가 대형사의 독과점만 초래할 것이란 비판도 거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탁자 책임을 지나치게 강화할수록 사업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당국의 강경한 태도는 결국 막대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초대형 업체 위주로만 판을 짜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강력한 자본력을 요구하는 구조 탓에 중소형사는 컨소시엄 형태가 아니면 사실상 시장 진입 자체가 가로막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관주 기자 p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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