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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현장조사 첫 제동...기업 ‘디지털 방어권’ 화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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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9-10 17:10:56   폰트크기 변경      

문자ㆍUSB 제출명령 내년 1월까지 정지

공정위 “위법 조사 아니다” 정면반박


“현장서 거부 못한다” 기업들 토로


연합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기업 현장조사에서 개인 휴대폰 속 문자메시지까지 요구해온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방식에 제동이 걸리면서, 기업의 ‘디지털 방어권’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공정위 현장조사와 관련해 법원이 자료제출명령의 효력을 멈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작지 않다.

10일 공정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전날인 9일 한화와 소속 직원 A씨가 낸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 7월 두 차례 내려진 문자메시지ㆍUSB 제출명령의 효력을 내년 1월 31일까지 정지했다. 이에 공정위는“조사공무원이 변호인과 피조사자의 사전 동의를 얻어 휴대전화를 확인했을 뿐 문자메시지를 무단 열람하지 않았고 강압적 조사도 없었다”고 즉각 반박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 말 시작된 한화그룹 계열사 간 브랜드 사용료 내부거래 의혹 조사였다. 조사 과정에서 공정위는 직원 A씨의 휴대폰에 담긴 문자메시지를 확인했고, 이를 캡처한 자료와 저장 USB를 잇달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이 유독 휴대폰 문자메시지에 주목한 이유는 디지털 증거가 갖는 특유의 성격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류나 장부와 달리 개인기기에 저장된 통신 내역은 한 번 열람되거나 복제되는 순간 침해가 이미 발생한 것과 다름없다. 나중에 처분이 취소되더라도 이미 들여다본 내용을 없던 일로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자료제출명령 자체의 위법성을 확정한 판단은 아니며, 조사 절차 전반이 적법했는지는 다음 달 29일 첫 변론이 열리는 본안 소송에서 가려진다.

공정위는 판결 직후 “조사가 위법하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재판부 판단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나아가 이런 식으로 자료제출명령의 집행이 반복적으로 막히면 조사제도 자체의 실효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며, 본안 소송에서 적법한 명령이었음을 적극 소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들이 그동안 겪어온 현장조사 관련 불편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예고 없는 조사로 업무가 멈춰서고, 조사 목적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자료를 요구받으며, 업무자료와 사생활ㆍ영업비밀이 뒤섞인 디지털 기기가 통째로 확인당할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이번 결정이 공정위의 조사 권한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라면서도, “다만 앞으로는 조사 범위가 꼭 필요한 만큼이었는지, 동의가 정말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뤄졌는지, 사적인 내용과 사건 관련 자료를 어떻게 구분했는지를 놓고 다툴 여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ㆍEU 등 해외의 공정위 격 반독점 기관도 디지털 자료 확보 권한은 폭넓게 행사하지만, 대량 자료를 봉인해 반출한 뒤 변호인 참관 아래 개봉ㆍ선별한다. 회사 서버와 개인 휴대전화를 구분해 규율하고, 변호사 비밀통신ㆍ사적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링 절차도 갖췄다. 국내 제도 역시 개인기기 차등 규율과 봉인ㆍ참관 절차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공정위 현장조사를 받은 적 있는 한 대기업 임원은 “조사관이 휴대폰을 요구하면 그 자리에서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고,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도 어디까지 열람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며 “이번 결정을 계기로 자료 범위와 절차를 사후에라도 다툴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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