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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칼럼] 오디세이, 다음 세대가 건널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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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9-21 13:49:33   폰트크기 변경      

영화 '오디세이' /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트로이의 성벽이 무너지던 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됐다. 최근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를 보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다. 호메로스가 그린 오디세우스는 전쟁의 승자가 아니라 전쟁 이후를 견뎌야 하는 인간이었다. 그가 건넌 것은 지중해라는 바다이기 이전에, 한 문명이 저물고 다음 질서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공백의 시간이었다.

역사학자들은 트로이 전쟁 전후를 청동기 문명의 붕괴 시점으로 짚는다. 미케네, 히타이트, 이집트 신왕국까지 지탱하던 국제 질서가 한 세대 만에 무너졌고, 그 자리엔 수백 년의 암흑기가 들어섰다. 오디세우스의 방황은 개인의 표류담이 아니라, 낡은 질서가 죽고 새 질서가 태어나지 않은 시대의 초상이었던 셈이다.

영화가 가장 아프게 찌르는 장면은 승리의 순간이다. 트로이 목마가 성문을 넘은 밤, 오디세우스는 승자가 아니라 죄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주인과 손님이 선물과 신의를 주고받는 환대의 규범, 이른바 '크세니아'를 관장하는 제우스의 법을 방패 삼아, 그는 정작 그 신의를 속임수로 짓밟고 성벽을 무너뜨렸다. 명분 없는 전쟁을 정의의 이름으로 세탁한 것도 그 자신이었다. 훗날 남의 재물을 축내는 페넬로페의 구혼자들과, 트로이의 문을 속임수로 연 오디세우스는 사실 그닥 다르지 않다. 둘 다 제우스의 법을 유리할 때만 불러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풍경도 다르지 않다. 국제적으로는 자유무역 질서가 관세와 공급망 재편으로 해체되고, 반도체·조선·방산의 패권 경쟁은 동맹과 시장의 문법을 무너뜨린다. 국내에서도 저출생과 재정 악화, 건설·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침체가 성장 서사의 종언을 알리고, 정치는 설계도 없이 눈앞의 셈법에만 골몰한다.

기자들 사이에서 기사의 핵심 주제를 '야마'라 부른다. 지금 가장 불안한 지점은 국제 질서에도 국내 정치·경제에도 뚜렷한 야마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냉전도, 자유무역도, 고도성장도 아닌, 원칙 없는 각자도생만이 시대의 주제가 되어가는 중이다.

문제는 이 항해의 다음 구간을 건너야 할 사람이 우리가 아니라 다음 세대라는 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오디세우스는 되찾은 이타카의 왕좌를 아직 미욱한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넘기고 페넬로페와 함께 다시 길을 떠난다. 제우스의 법을 스스로 깨뜨린 세대가, 그 대가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세대에게 왕국을 맡긴 채 물러나는 셈이다. 지금 우리가 물려주는 것도 무너진 성벽과 정리되지 않은 청구서에 가깝다. 원칙도 예측 가능성도 사라진 야만의 시대를 아무 죄 없는 젊은 세대가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이,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오래 남는 불안이다.


이란을 침공한 미국과, 러시아의 침략 앞에서 개입을 외면한 나토를 보면, 이 시대의 ‘제우스의 법’은 이미 유명무실해진 것은 아닌가. 그 법이 사라진 야만의 시대를 물려주고 우리는 물러난다. 다음 세대가 건너야 할 바다는 그만큼 깊고, 그들이 닿을 이타카가 과연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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