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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병불가 선언 이후 전략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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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9-23 04:00:11   폰트크기 변경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문제와 관련해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 대통령은 “다만 우리로서는 다른 국가들이 하는 것처럼 자국의 상선과 원유수송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은 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고 밝혔다. 국내정치적으로 지지도가 가파르게 하락하는 국면에서 파병을 둘러싼 남남갈등과 지지층의 이탈을 의식하여 이 대통령이 이란 전쟁에 개입하는 파병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함께 장기전의 수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전투병 파병은 피하고 대미투자 이행과 반도체 협력,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적극적 역할 등을 내세우며 미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려 한다.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이란 전쟁(중동전쟁) 동참은 동맹국의 의무라고 주장하며 관련국에 파병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들은 트럼프의 파병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영국·독일 등이 지난 5∼6월 기뢰제거함과 항공모함 등 해군 자산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아라비아해와 홍해에 보냈지만, 유럽연합(EU)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응하지 않고 ‘경제 왕따 작전(Operation Economic Outcast)’에 동참하고 있다.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각국은 군사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고 파병 요구와 거리를 뒀다. 중동으로부터 원유의 80% 이상을 구매하는 중국은 봉쇄가 장기화하면 경제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파병보다 해협 개방과 외교적 해결을 압박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일본은 헌법 제9조와 현행 법제가 자위대의 해외 파병과 무력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것을 근거로 호르무즈 해협 군함파견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고, 대규모 대미투자로 외교적 부담을 완화하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한미동맹의 특성상 ‘파병은 없다’고 단칼에 거부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2만 8500명의 주한미군을 4만 명으로 부풀려 말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압박하는 것은 미국이 한국안보를 위해 기여하는 만큼 미국이 어려울 때 한국도 기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파병의 명분과 정당성, 국내법적 절차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전투병 파견불가를 선언했지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파병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결정과정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파병딜레마를 풀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03년 9월 현지조사를 시작으로, 12월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 2004년 2월 국회 동의를 거쳐 2004년 8월 평화·재건 지원 임무를 맡은 자이툰부대의 파병이 이뤄졌다. 원래 파병 기간이 1년이었는데 현지조사, 공론화 과정, 국회동의 절차 등을 거치고 파병이 이뤄지기까지 거의 1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군을 파병할 때는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한국군은 평화·재건·복구에 한정하여 활동할 수 있었다. 파병과 관련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시간을 벌어 미국의 파병요구를 충족시키고 이라크의 반발을 사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의 경우는 국내정치적 배경이 작용하여 대통령이 ‘파병은 없다’고 먼저 선을 먼저 긋고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 확보에 기여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당장은 기존의 청해부대를 확대·강화하여 작전범위를 넓히는 등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 종전협상이 진척되면 재건과 평화유지와 관련한 활동에 참여하면 될 것이다. 당분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도 만회를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대미투자와 북미 정상회담으로 돌릴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친이란 무장세력 후티 등 ‘저항의 축’에 의한 확전을 막고, 중동전쟁을 조기에 종식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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