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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한 맺힌 골목길, 또 멈추라니…” 창신동 주민들이 종로구청 향해 확성기 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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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10-30 23:12:37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임성엽 기자]30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모처의 도로변. 붉은 바탕에 흰 글씨가 또렷한 손팻말 수십 개가 일제히 하늘 높이 치켜 올려졌다.

“주민 뜻대로 외치는 종로구청! 다수 주민의 뜻은 왜 외면하는가?”
“주민 동의서 효력은 지키고! 시행자 지정은 조속히!”
“불명확한 근거로 동의서 재징구? 법적 정당성을 입증하라!”

경찰 통제선(POLICE LINE) 안쪽 창신10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 강대선 위원장 오른손에는 주황색 확성기가 단단히 쥐여 있었다.

한 손에 성명서 종이를 든 채 확성기 마이크를 입에 대고 나온 그의 외침 뒤편으로, 모자를 챙겨 쓴 중ㆍ장년 주민들이 피켓과 손팻말을 치켜 들었다. 소방차 한 대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겨울마다 빙판으로 변하는 가파른 계단, 금이 가고 물이 새는 낡은 집에서 18년을 버텨온 창신동 주민들이다.

이들이 생업을 뒤로한 채 거리로 나온 이유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다. 법정 요건을 넉넉히 충족해 정상 접수한 사업시행자 지정을 종로구청이 5개월째 붙잡고 있으면서, 급기야 “기존 동의서를 무효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받아오라”는 요구를 내놨기 때문이다.

창신10구역 주민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토지등소유자 76%라는 동의율을 모아 지난 6월 10일 종로구청에 사업시행자 지정(신탁 방식)을 신청했다. 필요한 서류와 동의율을 법대로 다 맞췄으니, 이번 만큼은 길이 열릴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5개월간 묵묵부답이던 종로구청이 내놓은 답은 승인이 아닌 사실상의 퇴짜였다. 구청은 사업 추진 초기 일부 홍보 문구를 문제 삼은 소수 반대 측 민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법적 근거가 명확지 않은 도시정비법 제132조와 비법정 기구인 신속지원단 자문을 앞세워, 76% 주민이 도장을 찍은 동의서를 전부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걷어오라’고 통보한 것이다.

현장의 한 주민은 “동의서 접수 후 5달 동안 보완 사항 하나 없더니, 이제 와서 수백 명 동의서를 다시 받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동의서를 다시 걷는 동안 수년이 지연되면 하루가 다르게 뛰는 공사비와 주민 분담금 폭탄은 결국 누가 책임지느냐”고 했다.

법조계 역시 종로구청의 행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추진위 측이 의뢰한 법률 검토 결과에 따르면, “과거 추진 과정에서 배포된 일부 안내ㆍ홍보 문구만으로는 소유주들이 자유의사로 날인한 법정 동의서의 실체적 효력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강 위원장은 “법 조항을 들이대는 것과 그 조항이 기존 동의서를 무효화할 법적 근거가 되는지 입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비법정 자문기구에 불과한 TF 의견을 핑계 삼아 법정 심사 절차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27일, 자치구의 과도한 늑장 행정을 차단하기 위해 ‘정비사업 시행자 지정 30일 처리기준’을 신설했다. 앞서 수 차례 창신9·10구역의 신속 처리를 종로구청에 공식 요청한 상태다. 서울시와 중앙정부 모두 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주택공급 속도전을 외치고 있지만, 유독 종로구청만 행정 시계를 되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집회 현장을 메운 피켓 문구의 과녁은 일제히 종로구청을 향했다. 현수막에는 유찬종 구청장의 취임 슬로건인 “주민 뜻대로, 구민을 이롭게, 종로를 새롭게”가 쓰여 있었다.

주민들은 “76% 다수 주민의 간절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소수 반대 측 주장만 들어주는 것이 구청장이 말하는 ‘주민 뜻대로’냐”며 “사업을 지연시켜 공사비 부담을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대체 누구를 이롭게 하는 행정이냐”고 했다.

강대선 위원장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결코 특혜가 아니며, 법과 원칙에 따른 지극히 당연한 상식적 행정”이라며 “종로구청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무리한 법 해석으로 다수 주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법적대응은 물론 전면적인 장외 투쟁을 끝까지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엽 기자 star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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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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