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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유리의 색다른 이중주...“평생 행복과 사랑을 새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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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11-05 15:51:42   폰트크기 변경      
조각가 신재환 씨 12~26일 노화랑에서 개인전...근작 30여점 출품


조각가 신재환은 한국 돌조각의 대가인 전뢰진의 계보를 잇고 있는 50대 중견 작가다. 돌과 유리를 흙주무르듯 쪼고, 갈고, 연마해 입체적인 곡선의 미학으로 재탄생해 낸다. 현대 사회의 속도전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존재의 의미를 제안하며 줄곧 조각가의 길을 걸어왔다. 전기톱과 정, 망치, 글라인더를 손에 쥐고 평생을 꿋꿋하게 불나방처럼 살아온 그에게 조형미술은 인생의 세찬 폭풍우를 견디게 해준 반려자 같은 존재다. 인생 고비마다 조각 세계는 위안이 돼 주었다.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섰을 때도 묵직한 돌과 유리 앞에 서면 모든 것들이 거짓말처럼 정리가 됐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대리석 위에 동양의 정신을 펼치고, 유리로 선(禪)사상을 다독이는 둥지 같은 것이다. 조각을 통해 인간 내면에 깊숙이 숨겨진 행복과 사랑을 연출한 추상조각가 신 씨가 3차원의 입체미학으로 세상을 깨우는 이유다.

남서울대학교 작업실에서 정과 망치로 대리석을 쪼고 있는  신재환 씨.                                  사진=노화랑 제공


그렇게 조각가로 30년의 긴 시간을 살아온 그를 또 한 번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12일 시작해 오는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여는 초대전을 통해서다.

‘생명의 서정’이란 철학적 주제를 걸고 작업실에서 몸부림치며 완성한 미학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매일 12시간 넘게 남서울 대학교 작업실에 파묻혀 죽어라 조각에만 매달려 대차게 꾸린 근작 30여점을 풀어놓았다. 수천 번의 손질을 통해 번뇌를 씻어내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들이다.

상명대 미술과를 졸업한 뒤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석사)에서 공부한 신씨는 최근 유행한 단색화 기법에 착안해 명상과 행위를 자신의 조형 언어로 채택했다.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미적 감성으로 치환하기 위해서다. 자신을 무아의 경지의 극한점으로 몰아가며 미친 듯 몸을 낮춰서 작업을 해 온 그는 뒤늦게 남서울대 유리조형학과 박사과정을 밟았다. 지금은 남서울대에서 인재를 양성하며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신재환의 작업은 돌과 유리를 여러 겹으로 접착한 뒤 원하는 형태로 자르고 깎아 연마하는 정교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단단하고 불투명한 돌과 투명하거나 다채로운 색을 지닌 유리는 각기 다른 특성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조형적 구조를 이룬 게 특징이다. 기하학적 형태와 패턴을 바탕으로 형성된 작품은 빛과 시선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표정과 깊이를 드러내다. 서로 다른 재료가 하나의 형태 안에서 잔잔한 긴장과 묘한 하모니를 불러 일으킨다.

신재환의 '그 곳을 향하여'                                                           사진=노화랑 제공


12일 전시 개막을 앞두고 노화랑에서 만난 신씨는 “돌의 색즉시공 사상과 유리의 무상-무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자신의 미학 세계를 완성해 나갔다”고 했다. 돌과 유리에 담긴 특유의 철학적 사상을 응축해서인지 최근 작업들은 묘한 파라다이스 같은 환희가 넘쳐 흐른다. 실제로 그는 “유리의 공(空)과 돌의 색(色) 세계를 작품에 함께 녹여냈더니 이제야 조각이 조금 보인다”며 웃었다. 조각이 반복적인 손동작과 행위를 통해 채움과 비움의 조화를 이룬 균형의 미학이란 사실을 명확히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수만 번의 몸짓과 손질로 쌓아 올린 시간의 적층인 동시에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수행의 기록으로 읽힌다.

작가는 돌과 유리라는 재료의 대비를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이중성과 변화하는 정체성에 대한 탐구로 확장한다. 밝음과 어두움, 투명함과 불투명함이 교차하는 구조는 인간의 복합적인 내면과 순수성이 변화하는 과정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돌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분해하고 유리와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재료의 본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조형적 실천이기도 하다.

“조각은 근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 미학”이라고 말했다. 자름과 쌓음의 끝없는 반복, 증식 과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되묻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재환의 '그 곳을 향하여'                                               사진=노화랑 제공


 사실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재료를 하나하나 쌓아(積) 인간의 마음(意)을 형상화하는 적의(積意)가 담겨 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처럼 율동감이 숨쉬고 재질도 단순하다. 단단한 돌과 유리 덩어리를 활용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마치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처럼 풀어놓는다. 형태는 매우 단순하지만 기하학적인 논리와 표면의 색채, 공간의 조합이 묘한 아우라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복잡한 조각보다 숭고한 느낌을 준다.

조각 세계에 자신의 평생 삶을 묻겠다는 신 씨는 “돌과 유리를 조각하는 직업은 외롭고 고달프지만 숙명이고 나의 인생”이라고 말했다.

“나 자신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해 갈증을 느껴왔다. 사물, 사랑, 지식… 많은 것 중에서 특히 자연과 인간의 따듯함이 그립다. 경의, 사랑, 친화, 행복 같은 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담아 내려고 한다.”

신씨는 미술계 ‘마당발’로 불리는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의 큰아들이다. 태어날 때 입은 신경 손상 탓에 한 살 때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운보 김기창 선생처럼 작가가 되겠다”며 동양화를 배웠지만 성장하면서 조각에 더 관심이 갔다. 어머니는 ‘돌조각의 대부’ 전뢰진 선생을 소개해 줬고, 그 문하에서 7년간 조각을 익혔다. 그는 어머니의 혹독한 교육과 보살핌으로 상명대 조소과와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거쳐 촉망받는 조각가로 성장했다.

청각 및 언어 장애를 가진 신 씨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한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았다.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몰이해가 서러워 사회 전체를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장애는 단지 극복하거나 부정할 대상이 아니라 긍정과 인정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장애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일 시간을 잊고 바람 소리와 새의 지저귐을 좇아 하루를 보내며 마음속에 갈망하는 것 그대로를 돌과 유리에 새겼다.

신재환의 '둥지'                                           사진=노화랑 제공


그에게 조각은 장애 때문에 받는 차별적 시선을 녹여내는 용광로다. 그야말로 장애로 얻게 된 차이의 깊이를 깨닫고 자유자재의 경지에서 사랑, 행복, 가정의 평범한 일상을 돌에 되살려냈다. 자연과 인간의 따뜻함이 그립다는 작가는 “그동안 살아온 기적과 앞으로 살아갈 기적을 꿈꾸며 이태백이 산수 환경과 공간 환경을 시(詩)로 읊듯 현대인의 행복을 돌과 유리에 새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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