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TBM 장비 도입비에 희비…“유찰 사태 계속될 것”
장비손율만 적용된 공사, 실행률 안 나와
전력수요 증가에 터널 내경 확대…맞춤형 장비, 턱없이 부족
한전, 원도급사와 소통 부족 문제 지적도
TBM 장비가 제작되는 모습. /사진:대한경제DB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전력구 공사의 잇따른 유찰은 발주처인 한국전력의 설계단가와 건설사의 실행단가 간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설계 시 기계식 굴착장비인 TBM(터널보링머신) 비용을 신규 장비로 책정했느냐, 감가상각에 따른 장비손율만 반영했느냐에 따라 실행 공사비는 크게 달라진다.
여기에 터널 크기 확대에 따른 TBM 장비 부족과 최근 집중된 전력구 공사 발주 러시도 유찰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찰된 전력구 공사들은 모두 기계식 굴착공법을 요구하면서도 신규 TBM 장비에 대한 비용은 반영하지 않았다. 대신 장비손율만 반영해 굴진비용을 책정했는데, 이마저도 기존 장비를 도입하기엔 비현실적인 단가라는 것이 건설사들의 반응이다. 공공공사에서 드물게 예가 초과 투찰이 무더기로 나온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장비손율만 적용하게 되면 기존의 TBM 장비를 재사용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정해진 한전 공사원가에 따라 굴진비용이 책정된다. 반면, 신규 장비 도입비가 반영되면 전문업체가 TBM을 새로 제작해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된다.
경기지역 전력구공사(신가평-동서울)의 경우 신규 TBM 장비 도입비가 1차 기준 약 44억원(2대 기준), 2차 기준 약 70억원(3개 기준)이 반영됐다. 이에 최초 입찰에 12∼13개 컨소시엄이 응찰해 다른 유찰 공사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TBM 업계 관계자는 “TBM은 굴착 구간이 100m든 1㎞든 기본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장비 세트가 있기 때문에 굴진비용에 큰 차이가 없다. 구간이 짧다고 공사비를 대폭 낮게 책정하면 경제성을 맞추기 어렵다”라며, “80억원짜리 TBM 장비 세트를 사용하는 공사라면 향후 타 공사에 2∼3번 정도 더 재투입하는 것을 감안해도 20억∼30억원의 비용은 책정돼야 하는데, 10억원 밑으로 반영한다. 신규 장비 도입비가 적용되지 않고, 장비손율도 낮은 공사들은 유찰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TBM 장비와 최근 발주되는 공사 현장의 미스매칭 문제도 존재한다. 현재 전력구 공사에서 운용 가능한 TBM 장비는 약 74대인데, 이 중 60대는 세그먼트(TBM 장비를 감싸는 강철 원통형 쉴드) 내경이 2400∼3200mm다. 그동안 국내 전력구 현장은 이 범위 내 공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맞추기 위해 한번에 설치하는 송전선로 회선 수가 늘어났고 특히, 원자력발전소와 연결된 전력구는 내부 설비가 늘어나면서 터널 내경이 4000mm를 넘는 공사가 나오고 있다.
동해안변환소#1 전력구 공사의 경우 TBM 굴착길이는 443m로 길지 않으나, TBM 세그먼트 내경이 4500mm로 설계돼 있다. 용인-화성 전력구 또한 3800mm 구간이 있어 다수의 규격화된 장비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픽:김기봉 기자 |
국내에서는 동아지질이 4500mm TBM 장비를 보유하고 있고, 3800mm는 특수건설이 갖고 있다. 이는 전국에서 각 1대씩 밖에 없는 장비로, 현재로선 두 공사의 사업을 하려면 동아지질과 특수건설 단가에 맞춰 입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엔 비표준화된 규격의 공사는 발파를 통해 터널을 뚫었지만, 지금은 민원이나 주변 시설의 진동 영향 때문에 TBM 장비를 써야 한다. 그렇다고 4500mm 공사가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TBM 업체들이 추가로 장비를 제작하지도 않는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TBM 장비는 한정적인데 매년 전력구 공사가 대규모로 발주되는 것도 유찰 사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전력구 공사는 통상 3년 전후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기존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 물량이 나오다 보니 장비 수급에 문제가 발생한다. 올해만 해도 한전에서 계획한 전력구 공사 규모가 2조2000억원(약 80여 건)에 달한다.
다른 관계자는 “한전이 전력구 공사 발주 전에 TBM 장비 업계와는 소통하지만, 정작 원도급사인 건설사들과는 흔한 간담회 한번 열지 않는다”라며, “주민 민원이나 지자체 인허가 문제는 한전이 내부에서 관리할 수 없는 요소라고 해도, 공사비나 발주 시기 등은 한전이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최대한 유찰이 발생하지 않도록 건설업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전 관계자는 “공사비는 내부 설계기준에 따라 책정했다”라며, “전력구 적기 준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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