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신형경수로, 원천기술 문제 매듭 필요
다시 열리는 원전 시장, 핵연료 공급ㆍ처리 협력해야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사진:한수원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한국형 신형경수로인 APR1400의 원천기술 특허권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1호기는 웨스팅하우스의 노형이 적용돼 건설됐지만, 이후 한국형 경수로(OPR1000)와 신형경수로를 거쳐 완전한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는 것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입장이다. 다만, 한국형 원자로 설계 원천기술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이었던 만큼 지식재산권 행사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와 웨스팅하우스의 계약 관계가 공개된 적이 없어 명료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한국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이전받은 뒤 자립했다는 측면에서 원전 기술 수출 자체가 시빗거리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천기술의 지식재산권보다 더 부담스러운 측면은 미국 정부와의 관계다. 미 원자력에너지법에 따라 미국 기술로 제작된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선 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수원은 설계 기술 독립을 주장하고 있고, 미국 기업도 아니라 미 원자력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를 거치지 않은 채 체코 수출을 강행했을 때는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또한, 원자력공급국그룹(NSG) 지침과 핵확산금지조약(NPT) 등도 우리 원전 수출 사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에 한수원도 극도로 말을 아끼며 “최종 계약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응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은 “체코에서 200명의 법률가가 입찰 과정에서 원천기술 분쟁을 검토했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미국 정부의 판단이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웨스팅하우스도 결국 돈을 달라는 이야기인데, 체코 계약이 잘못되면 그들이 가져갈 수익의 기댓값도 제로다. 어느 정도의 몫을 떼어주느냐를 결정해야겠지만, 결국은 잘 해결되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이번 사건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한미 간 건설적 협력체계를 구축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원전 시공력을 상실한 웨스팅하우스는 신규 수익원 발굴을 위해서라도 글로벌 협력 파트너가 절실하다. 전 세계에서 원전 시공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한국과 프랑스뿐이다. 올 초 웨스팅하우스가 수주한 불가리아 원전 프로젝트에 현대건설을 단독 지목해서 참여시킨 것은 이 같은 이유다. 실제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한국의 원전 시공력은 ‘온 타임, 온 버짓(예산 내 적기 준공)’으로 유명하다.
이와 함께 한수원도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에서 얻을 게 많다. 이미 국내에선 신한울3ㆍ4호기 건설이 진행 중이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신규 원전 3기 추가 계획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나올 경구 한수원이 모든 사업을 독자적으로 감당하긴 어렵다. 특히, 핵연료 공급이나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할 분야가 남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양사가 기술 분쟁을 넘어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ㆍ양자공학과 교수는 “특허권 문제로 양사, 양국 간 서로 골치 아픈 상황이 됐는데, 어차피 웨스팅하우스는 독자적 수출 사업이 어렵다. 한국도 앞으로 원전 사업이 많아지면 발주처에 선택받는 것이 아닌 수익성을 보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 마련”이라면서, “핵연료나 방사성 폐기물 패키지 프로그램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번 기회에 특허권 문제를 확실히 마무리짓고, 향후 건설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양사를 넘어 한ㆍ미 정부 협의를 통해 다국형 사업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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