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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건설기능인등급제] ② 청소만 해도 경력 인정…숙련 기능인 설 자리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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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4-18 05:00:44   폰트크기 변경      

안정화 단계 없이 입찰가점 논란
등급 신뢰성 의문 탓 논의 '답보'

기능인 분포·보유 현황 '백지상태'
210일 일해도 중급…가산점 문제
등급증 받은 근로자 채 2% 안돼
이익단체 목소리 과잉반영 '변질'
수요처 안전 등 우려 거부감 확산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국토교통부는 조달청과 종합심사낙찰제와 적격심사 방식의 공사 발주 시 건설기능 등급을 보유한 근로자를 상시 고용한 건설사에 입찰 가점을 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가점은 신인도 평가에서 약 1∼2점을 부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제도는 작년 10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에 담긴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 안착 지원방안’의 일환이다. 원래는 지난 2월부터 추진했어야 했지만, 작년 말 논의 시작 단계부터 벽에 부딪히며 답보 상태다.

등급제 신뢰도가 확보되지 않았고, 등급을 보유한 기능인들의 지역별 분포와 기능인 보유 건설사의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분포 현황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국토부와 조달청은 “건설기능인 등급제가 2021년부터 시행됐지만 현재까지 등급 확인증을 받은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도 안 되고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고용된 상태인지도 알 수 없었다”라며, “관련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한 후 추진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 중”이라고 전했다.

국토부와 조달청은 지난주 올해 첫 실무자 논의를 재개했다. 제도 도입에 앞서 관련 연구용역의 진행 방향과 추진 단계에서 우려스러운 점, 산업계의 반대 의견 등을 면밀히 검토해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등급의 신뢰도다.

애초 건설 일용직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고 중장기적으로 국내 숙련 기능공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인 ‘건설기능인 등급제’는 각 기관의 이해관계와 노동조합 등 이익단체의 목소리가 과잉 반영되며 변질하기 시작했다.

현행 등급제는 현장경력과 자격 등을 종합 환산해 총 환산 경력연수가 3년-9년-21년을 기준으로 4단계 등급(초급ㆍ중급ㆍ고급ㆍ특급)으로 나뉜다.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1년 경력을 인정하는 근로일수가 연평균 작업 가능일수(186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탓이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연(年) 70일만 일해도 1년 경력으로 인정받아 210일만 일해도 중급으로 올라간다. 특히 미장공은 1년 경력 인정 일수가 50일에 불과하다. 여기에 교육훈련만 받아도 경력이 가산되는 구조다 보니 모든 가산점을 다 받으면 360일 경력자가 고급 기능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등급제의 가장 큰 맹점은 해당 기능인이 실제 등급에 부합하는 실력을 갖췄는 지를 점검할 최소한의 수단조차 없다는 점이다.

건설기능인 등급제 도입 TF에 참여 중인 전문가는 “현장에서 쓰레기만 주워도 경력으로 인정하는 구조여서 동일 등급 내 경력과 숙련도 차이가 현격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최소한 특급 기능인은 현장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구조대로라면 현장 반장급 기능인은 오히려 공사원가 부족 탓에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당 TF에서는 등급제의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한 개선안이 작년 말 논의된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산업연구원을 비롯해 대한건설정책연구원과 산업계는 최소한 등급이 올라갈 때마다 필수 교육이 필요하고, 중급에서 고급으로 승급할 때는 숙련도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내놓았다. 또 특급 기능인 대신 ‘기능명장’제도를 도입하는 ‘3(초급ㆍ중급ㆍ고급)+1’ 등급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고 수준 기능인은 해당 공종을 아우를 팀ㆍ반장 경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숙련도 평가’부분에서 완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기능인의 책임과 의무는 실종된 상태에서 등급제를 강행하다 보니 수요기관에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발주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기능등급제 도입 시범사업 추진을 강하게 요구해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능력도 확신할 수 없는 기능인을 안전관리자로 고용하는 안까지 담겨 있다”며 “사고가 한 번 크게 나서 관계 부처 담당자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야 제도를 원점 재검토하려는 지 대단히 걱정스럽다. 실제 현장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고려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고 우려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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