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원가 산정 기준 애매모호 탓
건설사들 직접노무비 부담 가중
기능인 최소기준 짜맞추기 우려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건설기능인 등급제’는 윤석열 정부의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건설공사 적정임금제’와 맞물리며 도입 취지를 상실한 지 오래다.
적정임금제란 건설근로자에게 발주처가 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도입 목적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상 기술자에게 최저임금을 도입하는 의미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 관계자는 “건설기술인에 대한 적정 임금에 대한 논의를 한 적이 있지만 등급별 기술자에 대한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어 (논의를)중단했다”며 “같은 고급 기술자라도 초고층 건설현장을 운용해 본 실무자와 공동주택 건설만 반복한 기술자를 동급에서 취급해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사업자가 악용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건설기능인의 적정임금제 도입에서도 같은 맥락의 우려가 나온다.
현재 건설기능인 등급제 전면 시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공사원가 산정 기준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각 공종과 공정에 맞춰 필요 기능인을 등급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눈 후 그에 따른 표준품셈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계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고, 행정 낭비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직접노무비 등 제비율에 가산 퍼센트(%)를 반영하는 안이다. 이 방식은 공사비 산정의 대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건설사에 손해를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소규모 공사일수록 제비율 가산분으로는 직접노무비 인상분을 감당할 수 없어 중소 건설사일수록 공사 손실분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이미 간접노무비로 안전관리자 한 명 배치 비용도 감당하지 못했던 사례가 직접노무비 분야에서 더 심각한 형태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경우 사업자들이 적정임금 제도를 공사 실행 손실분 최소화 방안의 하나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철근 배근의 경우 기능인 숙련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실력이 좋은 팀을 고용해 통으로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에서 등급별 기능인 배치를 상세하게 규정하면 최소 규정에만 맞출 수 밖에 없다”며 “숙련 기능인을 육성하고자 도입한 제도 탓에 자칫 국내 건설시장에서 숙련공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 같은 고급 기능인이어도 딱 적정임금만 받는 저숙련이거나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기능인 인건비 상승분은 건설사로 이어지는 구조가 될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도입 방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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