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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성과급으로 바꿔버리자?’…서울시의 ‘통상임금’ 해결 카드, 해법일까 꼼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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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5-16 06:00:44   폰트크기 변경      
통상임금 ‘지뢰’에 성과연봉제 카드 꺼낸 서울시

노조 “성과급으로 바꾸자는 건 꼼수”…법정 공방 불가피
서울의 선택, 전국 버스업계와 공공부문 임단협에 ‘불씨’ 옮기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지급 시점 기준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 장애인 접근권 방치의 국가 책임 여부, 친일재산귀속법 관련 사건 관련 선고를 진행했다. / 사진 : 연합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서울시가 시내버스 기사들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대응해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강수를 꺼내 들었다. 핵심은 두 달에 한 번 고정적으로 지급하던 정기상여금을 없애고 성과급 형태로 바꾸자는 건데, 노조는 “통상임금 판례 취지를 무력화하려는 임금삭감 목적의 꼼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논란의 출발점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대법원은 “재직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즉, “출근 잘하면 주겠다”던 상여금도 통상임금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서울시는 버스기사 임금이 25% 넘게 뛸 수 있다며,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안을 꺼내 들었다. “정기상여금은 빼고, 성과 기반으로 보상하는 임금구조로 조정하면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를 위해 시는 TF를 꾸려 대응에 나섰고, 지난 1월 회의에서 성과연봉제 전환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조는 이를 두 글자로 요약한다. ‘꼼수’. 대법원 판례를 무력화하는 편법이라는 비판이다. 유재호 노조 사무부처장 “법원 판결로 보장된 권리를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포기하라는 말”이라고 비난했다.

서울시가 빼든 ‘성과급 카드’가 위법 소지는 없는 것일까. 법적 쟁점은 단순하지 않다. 법조계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정을 피하려는 임금구조 개편이라면, 노조 합의 없이 강행할 경우 위법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과거 대법원은 2013년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하면서도, 소급 청구로 인해 사용자가 과도한 부담을 지게 되는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후 사용자 측은 이 ‘신의칙’을 근거로 통상임금 확대를 견제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판결 이후 법원은 이러한 편법을 점차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지난 2021년 12월16일 선고한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업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 위해 임금구조를 변경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에서 서종수 위원장(가운데), 박점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 등 참석자들이 대표자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 : 연합



이러한 판례들은 기업이 통상임금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임금구조를 변경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서울시의 임금체계 개편안도 법적 논란의 소지가 있다.

시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성과급 전환은 판결 취지에 어긋나지 않으며, 정부 지침에도 부합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개정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통해, 노사 협의에 기반한 성과급제 전환 등 임금체계 개편을 권고했다. 시는 이 지침을 근거로 노조와의 협상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의 임금개편 시도는 단순히 한 지자체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시가 꺼낸 ‘성과급 카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22개 지역 버스노조가 동시에 쟁의조정 절차에 돌입했고, 오는 28일 전국 동시파업도 예고된 상황이다. 서울의 대응이 전국적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임금체계 개편은 단순한 정책 조정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가진다. 통상임금 확대 해석의 첫 대응을 서울시가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의 결정이 다른 지자체나 민간 사업장에도 일종의 기준처럼 작용할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판례 문제를 넘어 한국 노사관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정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상임금처럼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면, 이를 노사가 교섭과 협의로 해결하기보다는 곧장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노사관계의 사법화가 가속화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과 서울시의 대응을 한국 임금체계 개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는 “수당 중심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한국 임금구조를 단순화해야 한다”며 “통상임금 확대는 오히려 그런 구조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통상임금의 개념은 이제 확정됐다. 그러나 그 개념을 적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노사와 사법부, 그리고 정책 당국 사이의 긴장을 남기고 있다. 서울시의 선택이 해법이 될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지는, 결국 법정과 교섭 테이블 위에서 가려질 것이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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