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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 속리산, 천왕봉까지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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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6-11 06:00:21   폰트크기 변경      
문장대ㆍ법주사도 좋지만 정상까지

국립공원 18개 산 정상 완등


속리산 문장대에서 본 관음봉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은 모두 23곳이다. 사적형으로는 경주가 유일하고, 다도해 해상과 같은 해상ㆍ해안형이 4곳이다. 나머지 18곳은 모두 산악형이다.

2년 전쯤 18곳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한 곳을 꼽아보니 남은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작년부터 가보지 못한 국립공원 정상에 오르기 시작했고 드디어 마지막 한 곳을 남겨두게 됐다. 바로 속리산 천왕봉이다.

속리산에서 최고의 절경은 문장대라고 알려졌다. 보통 법주사나 화북에서 문장대만 보고 내려온다. 함께 가기로 한 길벗들도 화북에서 문장대만 보고 내려온다고 하니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인 나로서는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 결국 나는 천왕봉을 거쳐 법주사까지 종주하고, 동반자들은 법주사 쪽에서 기다려주기로 계획을 세웠다. 배려가 고맙다. 마침내 국립공원 정상 탐방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있게 됐다.


속리산의 녹색 스펙트럼


차창 밖 속리산의 암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산들이 연출하는 속리산 풍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일주일만에 다시 산에 오르는데 계절빛이 좀 더 짙어졌다. 연녹부터 진녹까지 세상 모든 녹색이 섞인 것 같다. 그야말로 그린 스펙트럼이다.



문장대 가는 길

화북오송 지구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한다. 길지 않은 임도를 걸어 반야교를 지나 오른쪽 문장대 방향으로 틀면 산길이 시작된다.

초반 길은 힘들지 않다. 동반자들도 힘든 기색 없이 편안해 보인다. 완만한 길이 조금 길어지는 느낌이다.

약간 불안해진다. 올라야 할 고도는 정해져 있으니 쉬운 길이 길어지면 언젠가 가파른 길을 만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코스의 절반쯤을 앞두고 경사가 달라진다. 일행들이 슬슬 힘들어하고 걸음이 느려진다. 천천히 쉬어 가기로 한다.

등산객들이 사진을 찍고 오는 장소가 있는 것 같아서 우리도 가봤다. 암봉 하나가 떡 하니 보인다. 멋지다. 신선대냐, 무슨 봉이냐 말이 많은데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사진에 담았다.


멋드러진 암봉


그리고 또 오르막길. 정비가 덜 되어 있는 느낌이다. 너덜길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불편함이 있다.

어느새 슬슬 하늘이 열리고 주변 봉우리들이 눈높이와 비슷해진다. 경사도 능선길처럼 순해지고 멀리서 ‘하나, 둘, 셋~’하고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린다. 문장대가 멀지 않은 모양이다.



아∼문장대!

등산객들이 넘친다. 화북에서 온 이들과 법주사에서 온 이들이 문장대에서 합쳐졌으니 그럴 만하다. 테이블도 여러 개 있고 여기저기 앉아서 쉴 곳도 많다. 산객들이 붐비니 공단에서 준비를 많이 해놓은듯하다.

문장대 표지석 오른편에 있는 철계단을 오른다. 눈이 즐거워진다. 화북면 또는 밤티재쪽, 그러니까 문장대의 서북 방면 암릉이 정말 화려하다.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문장대에서 본 밤티재 방향 암릉


문장대에 올랐다. 바람이 세차다. 바람 소리에 정신이 없고 약간은 무섭기도 하다. 사방에 펼쳐진 절경이 황홀해 더 정신없게 만든다.

밤티재 쪽이든 관음봉 쪽이든 어느 방향으로 봐도 부족한 풍경이 없다. 최고다. 잠시 속리산에 빠져든다.


문장대에서 본 정상부 능선. 저 멀리 상왕봉이 보인다.


혼자 가야 할 정상부 능선을 마지막으로 담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내려간다. 길벗들과 간단한 간식을 먹고 다시 채비를 한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18번째 정상, 천왕봉으로

길벗들과 잠시 이별(?) 인사를 하고 신선대 방향으로 걸음을 시작한다. 시작은 편해 보인다.

하지만 천왕봉까지는 신선대, 비로봉 등 4개 이상의 봉우리를 오르거나 살짝 우회해 가는 약 3.5㎞ 코스다. 약 천미터를 중간 높이로 두고 오르고 내리는 암릉길이라 쉬운 길은 아니다.

바위 사이로 샛노란 작은 꽃 하나가 보인다. 이름 그대로 노랑제비꽃이지 싶다. 보통은 무리를 지어 피는데 이 녀석은 홀로 떨어져 있어 좀 안쓰럽다.

예상대로 적지 않은 높이를 내리고 오르고 한다. 세번째 정도의 오르막길에서 갑자기 작은 건물이 나타났다. 아, 이게 신선대 휴게소로구나. 테이블도 여러 개 있고 뒤쪽으로 화장실도 큰 게 있다. 과거에는 술도 팔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발면이랑 간단한 전 종류를 팔고 있는 것 같았다.

테이블 옆 바위에 올라 좀 전에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여기도 멋진 그림이다. 문수봉, 청법대 라인이 그려낸 암봉 능선이 아름답다.


신선대에서 본 청법대


기다리고 있을 일행을 생각하니 마음이 좀 급해진다. 오르고 내리고, 천왕봉이 가까워지고 있다.

법주사와 천왕봉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온다. 주인 없는 배낭이 하나 놓여 있다. 누군가 천왕봉까지 좀 더 편한 산행을 위해 배낭을 두고 갔나 보다. 어차피 이리로 다시 내려와야 하니까….


천왕봉 표지석


10분 남짓 가니 몇몇 등산객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천왕봉 표지석을 확인한다.

문장대에 비해 표지석도, 등산객 수도 초라하지만 ‘드디어 다 했구나’라는 뿌듯함이 없진 않다.

고개를 돌려 문장대 방향을 바라봤다. 반대 방향의 정상부 능선도 멋지다. 저 멀리 살짝 고개를 내민 듯한 문장대가 귀엽다.


천왕봉에서 본 정상부 능선. 저 멀리 문장대가 보인다.


하산길 그리고 정이품송

다시 출발. 계속 내리막길이다. 아까 그 갈림길부터는 계단으로 한참을 내려간다.

세심정까지 가는 산길은 숲에 가려져 사실 볼 건 딱히 없다. 부지런히 내려간다.

상환암 풍경 소리가 살짝 들린다. 세심정이 얼마 안 남은 모양이다. 세심정에 도착하면 산길은 끝이다.

속리산 세심정. 속세를 벗어나 산에 들어와 마음을 씻어 낸다는 뜻이다. 뒤이어 이어지는 세조길을 걷다 보니 정말 그런 기분이 든다.

세조길은 세심정에서 법주사까지 이어진 약 4㎞ 산책길이다. 세조가 법주사와 속리산을 좋아해 계유정난 전부터도 즐겨 걸었던 길이란다.

곁에 둔 계곡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일상을 잊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높은 산을 좋아하는 등산객이라면 지루한 한 감이 있을 수 있지만 산책길로는 참 좋다.

법주사 가는 길에 갑자기 호수가 보인다. 계곡물을 모아 만든 호수인 것 같은데 호숫가를 걷는 기분도 즐겁다.

법주사를 지나니 길벗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정이품송


돌아가는 길에 마음은 급하지만, 정이품송은 잠시라도 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세조 행차 때 가지에 가마가 걸렸는데 가지를 들어줘 지나가게 해줬고 세조가 정이품 벼슬을 내려줬다는 전설이 있다.

수령이 약 600∼700년 정도인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나무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다. 조선시대 선조들도 이 자리에서 나무를 봤을 텐데, 기분이 묘하다. 소나무 하나로 옛사람들과 연결되는 느낌이다.

기대를 넘는 속리산의 아름다움에 취한 하루였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이룬 날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등반의 기억들 속에 속리산은 오래 남을 것 같다.


글ㆍ사진=박종현 산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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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부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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