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중 17개 행정구역별로 내세운 공약 사항을 보면 철도 지하화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지상 철도 지하화를 통해 남는 부지를 상업, 업무, 주거, 공공시설 등 도시재생과 연계한 복합개발을 통해 공공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시작한 철도지하화를 민주당 정부에서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작년 3월부터 도심 내 철도 지하화와 철도 부지 통합개발을 위한 종합계획 수립을 진행 중이다. 국토연구원과 한국교통연구원, 유신, 도화엔지니어링 등이 수행 중인 해당 용역은 내년 3월 완료 예정으로, 연말께 전체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대상 노선을 포함한 종합계획 수립 및 고시가 예상된다.
이미 국토부는 작년 12월 철도지하화 1차 선도사업지로 △경부선 부산진역~부산역(2.8㎞) △대전조차장(2.4㎞) △안산선 초지역~중앙역(5.1㎞) 등 3곳을 선정했다. 대통령이 철도 지하화 사업의 주요 대상지로 서울과 부산, 인천, 경기를 꼽은 만큼 추가 선도 사업지도 대도심지 내 철도역 중심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철도 지하화 사업의 책임은 국가철도공단이 짊어졌다. 국토부가 철도지하화 통합개발 사업을 기획ㆍ승인하면, 공단이 기본 및 실시설계, 공사 발주, 시공 관리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공단은 하반기 중 철도 지하화 전담 자회사 설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할 방침이다.
철도 지하화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사업비 확보다. 사업 특성상 초기 투자비가 크지만, 현재까지 국가 재정 투입이 법적으로 가로막혀 있다. 사업시행자가 정부 기관 산하 자회사와 지방자치단체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철도 지하화 사업에서 공단 자회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자회사는 총괄사업시행자로 나서 지방자치단체 등과 공동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한 후, 채권을 발행해 초기 사업비를 확보할 무거운 책임을 진다. 공단의 채권 이율이 2∼3%인 점을 감안하면, 자회사의 채권 수익률 역시 공단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사업성 검토를 통해 대상지를 선정한 후, 지상부 개발 수익을 감안해 채권을 발행해 사업비를 확보한 후 지하화 공사 발주가 진행될 것”이라며, “지상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택지 분양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지하화 사업의 특성상 공사비가 예상 범위를 크게 초과할 경우다.
작년 1월 제정된 ‘철도 지하화 및 철도 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사업 시행자에 민간이 참여할 길이 원천 차단되어 있다. 공단 자회사의 채권과 지상부 택지 분양, 지방 재원을 통해서만 사업비 조달이 가능하다. 이는 다시 말해 공사비 초과분의 책임을 발주자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도시철도 사업에 참여 중인 건설사 임원은 “최근 진행 중인 지방의 지하 도시철도 사업만 따져봐도 공사비가 초기 예상 범위 내에서 수행된 사례가 없다”라며, “예상치 못한 지장물과 지반 침하 리스크 등 때문에 사업비가 설계금액보다 20% 이상 높게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자체 재원에 의존할 경우 공사비 분쟁으로 사업 중단 반복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1991년 착공한 미국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도심 지하 인프라 재구축 사업으로 꼽히는 보스턴의 ‘빅딕(Big Dig)’ 프로젝트 역시 최초 추정 사업비(28억달러)의 5배 이상인 148억달러를 투입하며 사업이 가까스로 끝났다. 이 때문에 완공 시점(1998년)도 10년 이상 지연됐고, 공사비 증액에 따른 분쟁으로 사업이 여러 차례 중단된 바 있다.
철도 지하화 본격 추진에 앞서 법 개정을 통해 재원 마련 방안을 다양화하고, 공사비 증액에 대한 철저한 예비비 확보가 선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심도 사업에 참여한 엔지니어링사 대표는 “철도 지하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공사 중에도 철도 운행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임시 시설물을 마련하고, 공사 시간도 제한돼 돌관 공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라며, “특히 장기 사업에서는 물가 상승분이 전체 사업비의 20~30% 이상을 차지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는 지 의문이다. 공단 자회사의 채권과 지자체 재원만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지자체부터 공단, 건설사들까지 모두 휘청일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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