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산ㆍ신불산ㆍ영취산 탐방
지난달에는 주말마다 비가 내려 한동안 산에 가지 못하다가 비 예보가 없는 날을 골랐다. 오랜만에 가는 김에 먼 곳으로 떠나볼까 해서, 사람들을 모아 전세버스로 산에 가는 안내산악회(가이드산악회)를 통해 코스를 예약했다.
그런데 출발을 3일 앞두고 코스가 인원 미달로 취소됐다.
안내산악회의 단점 가운데 하나. 이번처럼 예약한 코스가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코스를 찾다가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뒀던 영남알프스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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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산 입구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
영남알프스는 최고봉 가지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늘어선 1000m 이상의 일곱 봉우리(여덟 또는 아홉개라는 의견도 있다)와 능선들을 말한다. 경북 청도와 경주, 경남 밀양과 양산, 울산 울진에 걸쳐 있을 정도로 넓은 면적의 산악지대다.
태백산맥의 남부구간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근사해 알프스란 별칭이 붙은 듯하다. 들머리로 잡은 마을인 등억리의 이름이 2015년 ‘등억알프스리’로 공식 변경됐다고 하니 ‘알프스’는 이제 별칭이 아닌 공식 지명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안내산악회를 통해 선택한 코스는 간월산과 신불산, 영취산, 3개 봉우리를 탐방하는 여정이다.
여러 설이 있으나 산 이름이 모두 불교와 관련이 있다는데 영취산 날머리쪽에 있는 통도사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찰 아니던가.
그런데 출발 하루 전에 비 예보가 떴다. 불길하지만 그래도 큰 비가 아니길 희망하며 집을 나섰다.
안내산악회의 단점 둘. 심한 악천후가 아니면 보통 진행한다는 것이다.
창밖으로 확실히 짙어진 계절 빛이 쉴새 없이 지나간다. 이제 봄은 가고 여름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런데 슬픈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도착을 한 시간 정도 앞두고 조금씩 빗방울이 보인다. 차 유리를 닦는 와이퍼의 속도가 빨라진다.
이번 산행 대장님의 코스 소개가 끝나자 들머리에 도착했다. 영남알프스 ‘웰컴복합센터’라는 곳인데 조금 놀랍다. 국립공원 이상으로 시설이 크고 좋았기 때문이다. 도립공원이 맞나 싶을 정도다.
굵어지는 빗줄기에 서둘러 채비를 한다. 우산도 꺼내고 레인커버도 씌우고 큰 광장 끝 산길로 서둘러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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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 가는 임도 |
오늘의 첫번째 봉우리, 간월산. 간월산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간월공룡능선이라는 암릉길이고, 다른 하나는 약간의 산길을 지나 임도를 통해 가는 길이다.
공룡능선은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비가 내리는 날 우산까지 들고 암릉을 오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 임도길을 택했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걷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초반부는 정비가 잘 된 길이라 수월한 편이다. 이어서 간월재와 신불산 홍류폭포 갈림길. 우측 간월재로 향한다.
조금씩 길이 험해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다만 오를수록 조금씩 짙어지는 운무에 불안해지고 조급해진다. 어느새 나타난 임도는 차도 다니는 수월한 길이다.
꼬불꼬불 수차례 경사길을 돌아 오른다. 이제는 확실히 운무에 갇힌 느낌이다.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간월재 근처에 온 듯했다. 우산이 뒤집어져 겨우겨우 붙들고 간월재휴게소로 들어간다. 휴게소는 시설도 좋고 규모도 작지 않다.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것도 판매한다. 우측에 꽤 넓은 마루바닥이 있는데 등산객들이 무리를 지어 음식을 나눠 먹으며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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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 휴게소 |
우산은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아 비옷을 꺼냈다. 배낭은 휴게소에 내려고 비옷만 걸치고 간월산 정상으로 향했다. 신불산 쪽으로 가려면 다시 간월재로 돌아와야 해서 굳이 가져갈 필요는 없다.
간월산으로 향하는 계단길. 비바람이 너무 사납다. 중간에 전망대 같은 게 있긴 한데 전망대만 있지 전망할 경치는 없다.
계단길이 끝나고 바위길을 지나 오른 간월산 정상.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바람 속에서도 인증샷을 찍고 있다. 사방을 돌아봐도 보이는 건 구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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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산 정상 |
다시 간월재휴게소로 돌아왔는데 그냥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보이는 것도 없고 옷은 젖기 시작하고 춥다. 하지만 약속한 날머리로 가야 한다.
안내산악회 단점 셋.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
배낭을 메고 마음을 잡고 신불산으로 출발. 휴게소 앞 데크시설이 아주 근사하다. 멋진 돌탑과 주인 없는 테이블이 수없이 보인다. 듣던 대로 명소인가 보다.
이제 오르막이다. 나무 계단길 옆으로 야생화들이 비바람을 피해 몸을 낮춰 빛을 내고 있다. 봄의 마지막 흔적을 위해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다.
30분 정도 올랐을까. 커다란 전망 데크가 보인다. 아마도 간월재, 간월산, 배내봉, 배내고개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의 거대한 능선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인 듯한데, 사진으로 본 기억으로 상상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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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 가는 길 전망대 |
답답한 능선길의 정상. 어느새 신불산 정상이다. 전망데크 같은 게 있는데 역시 보이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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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 정상 |
볼 경치는 없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봄꽃들이 눈에 띈다. 운명을 예감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마치 하나의 계절을 내려놓고 새 계절을 받아들이는 모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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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물산 정상부에서 만난 꽃잎 |
마지막 영축산으로 향한다. 앞쪽이 완전히 열린 내리막길이다. 희미하게 데크길로 잘 정비된 네 갈래길이 보인다. 신불재다.
영축산으로 직진. 억새로 유명한 길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억새 계절이 아니어서 볼 것은 없다. 길은 예쁘게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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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가는 억새길 |
바람이 점점 더 거세어진다. 운무가 능선을 타고 넘어가는 듯 움직인다.
암릉 길을 지나니 영축산 정상이다. 오늘 여정 중 가장 강한 바람을 만났다. 서있기 어려울 정도다. 바람을 피해 숲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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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정상 |
날머리로 가는 길은 주의가 필요하다. ‘지산마을’ 표지만 보고 가는 게 좋다. 임도로 접어들면 약속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경사가 만만치 않아 스틱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내려와 약속 장소인 ‘만남의광장’에 도착했다. 들머리와 비교해 보면 날머리는 정말 소박한 느낌이다. 비바람에 지쳤는지 모두 일찍 산행을 마감했다. 30분 먼저 출발하기로 한다.
운무 속 뽀얀 풍경만 보이는 소위 ‘곰탕산행’은 오랜만이다. 놓친 절경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산행도 의미는 있다.
먼 풍경 대신 가까운 존재들에서 의미를 찾아보고 더 가까이는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저 멀리 펼쳐진 절경만이 답은 아니다. 이런 것도 ‘거피취차(去彼取此)’라고 하나. 이런저런 생각과 고단한 몸을 돌아오는 버스에 실었다.
글ㆍ사진=박종현 산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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